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익상(李翊相)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74C775C0C1B1625X0
자(字)필경(弼卿)
호(號)매간(梅磵)
시호(諡號)문희(文僖)
생년1625(인조 3)
졸년1691(숙종 17)
시대조선중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소한(李昭漢)
조부이정귀(李廷龜)
저서『매간집』

[상세내용]

이익상(李翊相)
1625년(인조 3)∼1691년(숙종 1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필경(弼卿), 호는 매간(梅磵). 좌의정 이정귀(李廷龜)의 손자이며, 형조참판 이소한(李昭漢)의 아들이다.

1652년(효종 3)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참봉이 되었다가, 1660년(현종 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검열에 천거되었다. 현종 초년에 부정자로서 춘추관기사관을 겸직하여 『효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대교사간필선 등을 거쳐 1672년 대사간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75년(숙종 1) 한성부우윤대사헌 등을 맡아보면서, 숙종 초년 예론(禮論)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국정에 대하여 서인(西人)의 입장에서 활발한 언론활동을 하였다.

1679년 도승지로 재직하면서, 송시열(宋時烈)의 예론을 비판하는 곽세건(郭世健)을 공격하였고, 이듬해 대사헌이 되어 윤휴(尹鑴)허목(許穆)을 면박하는 등의 정치활동을 하다가 강릉부사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같은해 경신대출척으로 남인(南人)이 실각하자 다시 대사헌에 임명되어 종실 정(楨)염(柟)권대운(權大運)민희(閔熙) 등의 남인세력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1681년 이조참판부제학에 임명되고, 1682년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으나, 1686년 대신들의 공박을 받아 한때 개성유수로 보외되었다.

1687년 공조판서, 이듬해 우참찬제학이조판서를 지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사직하고 고향 양주로 퇴거하였다. 숙종『심경석의(心經釋疑)』를 간행하려고 할 때 그것이 이황(李滉)이 친히 쓴 것이 아니고 그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므로, 정확을 기하기 위하여 송시열의 교정을 거쳐서 간행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 일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의 입장을 충실히 지켰다.

문집으로 『매간집』을 남겼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肅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淸選考

[집필자]

정중환(丁仲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