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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겸선(睦兼善)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BAA9ACB8C120B1609X0
자(字)달부(達夫)
호(號)용제(容齋)
생년1609(광해군 1)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사천(泗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목서흠(睦敍欽)

[상세내용]

목겸선(睦兼善)
1609년(광해군 1)∼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달부(達夫), 호는 용제(容齋). 목서흠(睦敍欽)의 아들이며, 목내선(睦來善)은 그의 동생이다.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644년 참봉(參奉)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7년 지평을 거쳐, 1649년(효종 즉위) 암행어사로 활약하였다.

1655년(효종 6) 다시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갔고, 이어서 수찬헌납이조좌랑교리부교리부응교사간응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효종 때는 사은사(謝恩使)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수찬검상(檢詳)부응교사인(舍人)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 집의 때는 교지에 따라 차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수령들의 세 포탈과 궁가(宮家)의 전원의 남점(濫占)으로 인하여 궁노의 민가에까지 폐해를 끼치는 행위를 시정할 것, 그리고 서북에 있는 관리들은 각사노비(各司奴婢)의 도망자를 명백히 보고할 것, 피죄된 관리들에게도 다시 벼슬 길에 오르는 기회를 빨리 열어줄 것 등이다.

또한, 공전(公田)에 개인집을 짓는 것이라든가 도성 밖의 도로에 수근전(水芹田)을 만들어 도로를 점령, 단절시키고 있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소를 올려 이를 시행하게 하였다.

1661년 사인집의수찬을 지내고, 1664년 동부승지첨지(僉知)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대표명목겸선(睦兼善)
겸선(兼善)
성명목겸선(睦兼善)
달부(達夫)
용재(容齋)

성명 : "목겸선(睦兼善)"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郯述v01孝宗十年正使嶺陽君儇副使右參贊南老星書狀官掌樂正睦兼善
郯述v02睦兼善
郯述v04座目未詳○庚寅畐副學閔應亨應敎洪處尹本館錄外張應一申混睦兼善栦大運四人加入
祔廟都監儀軌 弘文館校理吳始壽 五月十五日 啓下 弘文館修撰睦兼善 四月二十七日 啓下 五月十九日奪告身 郞廳六員
祔廟都監儀軌曰 都廳李敏迪出使 還朝遲速 不可預料 其代以修撰睦兼善 差下 使之察任何如 傳曰 允
祔廟都監儀軌都提調意 啓曰 都廳李敏迪以其奉使之故 其代以修撰睦兼善差下矣 睦兼 善方在奪告身中 李敏迪竣事還朝 而自
祔廟都監儀軌司成郭之欽各熟馬一匹 校理吳始壽半熟馬一匹 修撰睦兼善兒馬一匹 郞廳佐郞朴昌文.禹昌績.副司 果羅萬葉竝
大王大妃殿王大妃殿尊崇都監都廳儀軌 弘文館校理吳始壽 五月十五日 啓下 弘文館修撰睦兼善 四月二十七日啓下 五月十九日奪告身 郞廳六員
大王大妃殿王大妃殿尊崇都監都廳儀軌成郭之欽 各熟馬一匹 校理吳 始壽半熟馬一匹 修撰睦兼善兒馬一匹 郞廳佐郞 朴昌文‧禹昌續‧副司果羅萬葉竝
推刷都監儀軌n1-2책 京畿 御史前修撰睦兼善 郞廳司僕寺僉正李星徵 筭眞洪敍疇 執吏司宰監書眞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司憲府大司憲蔡裕後禮曹參判李一相都廳郞廳司憲府執義睦兼善議政府舍人趙龜錫宗簿寺正郭之欽吏曹正郞金壽興一房堂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實錄廳啓曰實錄已爲完畢儀軌不可不及時修正都廳郞廳 睦兼善趙龜錫金壽興沈世鼎使之依前例仍爲修正而 刑曹則當設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二月二十七日卒逝 禮曹參判李一相都廳郞廳司憲府執義睦兼善議政府舍人趙龜錫弘文館應敎金壽興弘文館副應敎沈世鼎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司憲府大司憲李一相 仕二百一日 都廳郞廳議政府舍人睦兼善 仕二百十九日 司諫院司諫趙龜錫 仕二百四十一日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兵曺參判李一相都廳郞廳應敎金壽興 副應敎沈世鼎修撰睦兼善楊州牧吏趙龜錫竝加資郞廳副司 果呂聖齊謄錄郞廳承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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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