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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성(朴日省)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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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학로(學魯)
생년1599(선조 32)
졸년1671(현종 12)
시대조선중기
본관상주(尙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박치안(朴致安)
생부박치공(朴致恭)
조부박충우(朴忠佑)

[상세내용]

박일성(朴日省)
1599년(선조 32)∼1671년(현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학로(學魯).

첨정(僉正) 박충우(朴忠佑)의 손자이며 훈련원정(訓鍊院正) 박치공(朴致恭)의 아들로, 찰방 박치안(朴致安)에게 입양되었다.

1625년(인조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보직되었고 뒤에 승정원주서사섬시직장전적형조좌랑병조좌랑 겸 기사관을 지냈다. 함평현감(咸平縣監)으로 나아가 학문의 진흥에 힘썼으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뒤 다시 병조정랑성균관직강예조정랑 겸 기주관제천현감(堤川縣監)을 거쳐 통례원상례 겸 편수관지제교(知製敎)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1646년 강빈옥사(姜嬪獄事)에 연루되어 파직, 고향에 내려가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뒤 효종이 즉위하자 다시 등용되어 고성현감정언좌우통례(左右通禮)승문원판교영해부사 등을 지냈다.

1666년(현종 7) 승지경력(經歷)참찬관(參贊官)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을 겸하다가 노병(老病)을 이유로 사양하였다.

평시에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성(性)이며, 효제충신(孝悌忠信)은 도(道)라 하였으며, 성은 마음의 이치에서 구하는 것이며, 도는 몸이 마땅히 행할 바의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항복하지 말고 대항하여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유원동(劉元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