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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길(宋時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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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립(仲立)
생년1597(선조 30)
졸년1656(효종 7)
시대조선중기
본관여산(礪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송일(宋馹)

[상세내용]

송시길(宋時吉)
1597년(선조 30)∼1656년(효종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중립(仲立).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송일(宋馹)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에 이미 경사에 통달하여 1615년(광해군 7)에 진사가 되고, 1623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거쳐 사헌부감찰 및 공조‧예조‧병조의 좌랑과 호조‧예조‧병조의 정랑을 지냈다.

1626년(인조 4)에 사간원정언이 되고, 이듬해 사헌부지평세자시강원필선을 지낸 뒤, 1634년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이어 상의원정(尙衣院正)승정원우부승지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1643년에 외직으로 나가 경주부윤, 1645년에 금성현감(錦城縣監)이 되었다.

이때 도둑이 많은 금성 지방의 토포사(討捕使)를 겸임하였는데, 그는 법을 바르게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엄하지 않아 주민들이 법을 잘 지키게 되었다.

1648년 형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刑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 등을 거쳐 1652년(효종 3) 한성부우윤도승지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여 잠시도 부모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으며, 조정으로부터 연행(燕行)의 명이 있자 왕의 윤허를 얻어 성묘를 하고 떠났다고 한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공원영(孔黿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