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일(尹民逸)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BBFCC77CB1564X0 |
자(字) | 현세(顯世) |
호(號) | 지산(芝山) |
생년 | 1564(명종 19) |
졸년 | 1635(인조 1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엄(尹儼)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민일(尹民逸)
1564년(명종 19)∼1635년(인조 1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현세(顯世), 호는 지산(芝山). 이조좌랑 윤엄(尹儼)의 아들이다.
형 윤민헌(尹民獻)과 같이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59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거쳐, 1601년 병조좌랑을 역임한 뒤 이어 예조좌랑이 되고 다음해 사헌부지평으로 세자시강원문학을 겸직하였다.
이때 정인홍(鄭仁弘)이 이미 죽은 성혼의 관작을 추탈할 것을 음모하자 스승의 신구(伸救)를 상소하다가 수원판관으로 좌천되었다.
1603년 예조정랑이 되고 다음해 개성부경력(開城府經歷)을 역임한 뒤 합천군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609년(광해군 1) 성균관전적으로 춘추관기사관을 겸직하면서 『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1618년 동래부사가 되고, 1627년(인조 5) 관직을 사임한 뒤로는 고향에서 수년 동안 한거하다가 죽었다.
형 윤민헌(尹民獻)과 같이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59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거쳐, 1601년 병조좌랑을 역임한 뒤 이어 예조좌랑이 되고 다음해 사헌부지평으로 세자시강원문학을 겸직하였다.
이때 정인홍(鄭仁弘)이 이미 죽은 성혼의 관작을 추탈할 것을 음모하자 스승의 신구(伸救)를 상소하다가 수원판관으로 좌천되었다.
1603년 예조정랑이 되고 다음해 개성부경력(開城府經歷)을 역임한 뒤 합천군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609년(광해군 1) 성균관전적으로 춘추관기사관을 겸직하면서 『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1618년 동래부사가 되고, 1627년(인조 5) 관직을 사임한 뒤로는 고향에서 수년 동안 한거하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조계찬(趙啓纘)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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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