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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尹銑)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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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택원(澤遠)
호(號)추담(秋潭)
생년1559(명종 14)
졸년1637(인조 15)
시대조선중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윤언례(尹彦禮)
밀양박씨(密陽朴氏)
외조부박승효(朴承孝)
출생지삼가(三嘉) 구평(龜坪)
저서『추담문집』

[상세내용]

윤선(尹銑)
1559년(명종 14)∼1637년(인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택원(澤遠), 호는 추담(秋潭). 삼가(三嘉) 구평(龜坪)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이조판서에 추증된 윤언례(尹彦禮)이며, 모친은 밀양박씨(密陽朴氏)사직 박승효(朴承孝)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록전적, 승문원정자, 홍문관박사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고향에서 임진왜란 소식을 듣고 상경하였는데 선조가 이미 의주로 떠나자 즉시 쫓아갔다. 선조가 그 충절을 가상히 여겨 사헌부장령에 임명하고, 특별히 명하여 세자를 수행하게 하고, 묘주(廟主)를 봉행하게 하였다.

1601년 부안현감을 거쳐 1603년 사간원대사간에 임명되었고, 1605년 예조호조참의를 역임하였고, 1606년 승정원우승지도승지, 성균관대사성을 지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이조참판에 임명되었고, 병조참판예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로 인하여 인목왕후(仁穆王后)가 구금되자 위졸을 시켜 미육(米肉)을 헌납하였다. 이 일이 발각되자 그는 공궤(供饋)를 하지 않으면 만세(萬世)에 불효의 이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광해군을 설득하여, 광해군이 공궤를 끊지 않게 하였다.

1614년 주문사(奏聞使)중국을 다녀왔고, 1617년 의정부우참찬에 임명되었으며, 조경기(趙慶起)홍무적(洪茂績) 등이 시사를 항언하여 광해군이 그들을 죽이려고 하자 극력 주선하여 구원하였다.

1623년 인조가 즉위하여 다시 우참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산수를 즐기며 여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추담문집』 2책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秋潭文集

[집필자]

이해권(李海權)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