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로(尹東老){1}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B3D9B85CB1550X0 |
자(字) | 기중(期中) |
호(號) | 수심당(水心堂) |
생년 | 1550(명종 5) |
졸년 | 1635(인조 1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언성(尹彦誠) |
외조부 | 조우신(趙又新)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동로(尹東老)
1550년(명종 5)∼1635년(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기중(期中), 호는 수심당(水心堂).
부친은 생원 윤언성(尹彦誠)이며, 모친은 조우신(趙又新)의 딸이다.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1595년(선조 28) 사과로 있을 때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공조좌랑이 되었으나 행동이 단정하지 못하고 공식회의에도 잘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삼도수군통제사의 종사관에 다시 기용되었으나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탄핵을 받았고, 1604년 울산판관 재직 때 백성들을 심히 탄압하다 처벌되었다.
1629년(인조 7) 80세로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파흥군(坡興君)에 봉해졌다.
부친은 생원 윤언성(尹彦誠)이며, 모친은 조우신(趙又新)의 딸이다.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1595년(선조 28) 사과로 있을 때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공조좌랑이 되었으나 행동이 단정하지 못하고 공식회의에도 잘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삼도수군통제사의 종사관에 다시 기용되었으나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탄핵을 받았고, 1604년 울산판관 재직 때 백성들을 심히 탄압하다 처벌되었다.
1629년(인조 7) 80세로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파흥군(坡興君)에 봉해졌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집필자]
김용덕(金龍德)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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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