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신(趙又新)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6B0C2E0B1583X0 |
자(字) | 여읍(汝揖) |
호(號) | 백담(白潭) |
생년 | 1583(선조 16)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한양(漢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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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 조상(趙相) |
저서 | 『백담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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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정보]
[상세내용]
조우신(趙又新)
1583년(선조 16)∼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여읍(汝揖), 호는 백담(白潭). 조상(趙相)의 아들이다. 정경세(鄭經世)‧이현영(李顯英)의 문인이다.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합격하고, 광해군의 폐모론에 반대하여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유희분(柳希奮)의 3적신(賊臣)을 참할 것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환(仕宦)을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1644년(인조 22) 학행(學行)으로 천거를 받아 참봉이 되었고, 4년 후에 봉사(奉事)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자를 거쳐 학정‧전적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백담집』이 있다. 상주의 지강서원(芝岡書院)에 제향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합격하고, 광해군의 폐모론에 반대하여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유희분(柳希奮)의 3적신(賊臣)을 참할 것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환(仕宦)을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1644년(인조 22) 학행(學行)으로 천거를 받아 참봉이 되었고, 4년 후에 봉사(奉事)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자를 거쳐 학정‧전적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백담집』이 있다. 상주의 지강서원(芝岡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嶺南人物考
尙州邑誌
嶺南人物考
尙州邑誌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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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