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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록(金元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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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수(景受)
생년1546(명종 1)
졸년1627(인조 5)
시대조선중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종(金綜)
외조부이양(李樑)

[상세내용]

김원록(金元祿)
1546년(명종 1)∼1627년(인조 5). 조선 선조광해군 때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수(景受).

부친은 사헌부감찰 김종(金綜)이고, 모친은 이양(李樑)의 딸이다. 양사언(楊士彦)남언경(南彦經)의 문인이다.

1588년(선조 2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형조좌랑을 역임하고, 1594년 병조좌랑이 되었으나, 인물됨이 용렬하다는 사헌부의 탄원에 의하여 교체되었다. 이어 북청판관(北靑判官)이 되었으나, 또 적임자가 아니라는 사간원의 반대로 교체되었다.

강원도도사(江原道都事)어천찰방(魚川察訪) 등을 거쳐 예조좌랑이 되었다가, 1602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후 사간원정언예조정랑헌납 등을 번갈아 역임했는데, 이때 사고(史庫)의 정비에 따라 춘추관기주관으로 실록편찬사업에도 참여하였다. 이어서, 성균사예(成均司藝)로 외직에 나가 영해(寧海)희천(凞川)삼척(三陟)을 다스리다가 1610년(광해군 2) 경직에 돌아왔다.

이듬해에 왕이 사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성지인(老成之人)으로 가자(加資)하였다.

1613년 다시 외직에 나가 금산(錦山)을 맡아 선정을 베풀다가 폐모론이 일어나자 전리(田里)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뒤 돈녕도정동지돈녕부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人物考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