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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섬(黃暹)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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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명(景明)
호(號)식암(息庵)
호(號)돈암(遯庵)
시호(諡號)정익(貞翼)
생년1544(중종 39)
졸년1616(광해군 8)
시대조선중기
본관창원(昌原)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황응규(黃應奎)
조부황사우(黃士祐)
외조부이수려(李壽旅)
출생지서울
저서『식암집』

[상세내용]

황섬(黃暹)
1544년(중종 39)∼1616년(광해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경명(景明), 호는 식암(息庵)돈암(遯庵). 서울 출생.

찬성 황사우(黃士祐)의 손자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황응규(黃應奎)의 아들이며, 모친은 의빈도사(儀賓都事) 이수려(李壽旅)의 딸이다.

정탁(鄭琢)의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 성균관유생이 되고,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한성부참군해운판관황해도사호조좌랑 등을 거쳐 1577년 서천군수가 되었다.

이때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정언을 거쳐, 사간집의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성주목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병조참지로서 대가(大駕)를 호종(扈從)하고, 평안도모운사(平安道募運使)에 선임되어 군량 수운에 공을 세웠다.

이듬해 호조참의로서 대가를 따라 해주에 이르러 모군(募軍)과 식량공급 등 당면 국방정책을 건의하였다.

1594년 안동부사가 되고, 뒤에 다시 이조호조참의,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호조이조예조참판을 거쳐, 대사헌지제교 등을 지냈다. 광해군 즉위 후에는 퇴관한거(退官閑居)하면서 후진교육으로 여생을 보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풍기 우곡서원(愚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식암집』이 있다.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息庵集

[집필자]

김용국(金龍國)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