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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전(禹性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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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선(景善)
호(號)연암(淵庵)
시호(諡號)문강(文康)
생년1542(중종 37)
졸년1593(선조 26)
시대조선중기
본관단양(丹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우언겸(禹彦謙)
처부허엽(許曄)
저서『계갑록(癸甲錄)』
저서『역설(易說)』
저서『이기설(理氣說)』

[상세내용]

우성전(禹性傳)
1542년(중종 37)∼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경선(景善), 호는 추연(秋淵)연암(淵庵).

현령 우언겸(禹彦謙)의 아들이며, 대사헌 허엽(許曄)의 사위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61년(명종 16) 진사가 되고, 1564년 보우(普雨)를 주살할 것을 청원하기도 하였다.

1568년(선조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예문관검열예문관봉교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하고 1576년 수원현감으로 나가서는 명망이 높았으나, 그뒤 한때 파직되었다가 다시 사헌부장령사옹원정을 거쳐 1583년에 응교가 되고 뒤에 여러 번 의정부사인을 역임하였다.

동서분당 때 동인으로 분류되었고, 그뒤 이발(李潑)과 틈이 생겨 그는 남산에 살아서 남인, 이발은 북악(北岳)에 살아서 북인으로 분당되었다. 남인의 거두로 앞장을 섰으며, 동서분당 때나 남북의 파쟁에 말려 미움도 사고 화를 당하기도 하였다.

1591년 서인 정철(鄭澈)의 사건에 연좌되어 북인에게 배척되고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풀려나와 경기도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군호(軍號)를 추의군(秋義軍)이라 하고 해염(海鹽)과 식량을 조달하여 난민을 구제하고, 강화도에 들어가서 김천일(金千鎰)과 합세하여 전공을 세우고 강화도를 장악하여 남북으로 통하게 하였다.

병선을 이끌어 적로를 차단하였으며, 권율(權慄)수원 독성산성(禿城山城)에서 행주에 이르자 의병을 이끌고 지원하였다. 그 공으로 봉상시정에서 대사성으로 서용되었다.

그뒤 계속 활약, 용산의 왜적을 쳐서 양곡을 확보하여 관군과 의군의 자량을 삼게 하였다.

그뒤 퇴각하는 왜군을 경상우도 의령까지 쫓아갔으나 과로로 병을 얻어 경기도 부평에서 사망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계갑록(癸甲錄)』『역설(易說)』『이기설(理氣說)』 등이 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宣祖修正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東儒師友錄
星湖先生文集
黨議通略

[집필자]

김석희(金錫禧)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