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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당(南季堂)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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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희정(希正)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의령(宜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남지(南輊)
조부남상명(南尙明)
증조부남심(南深)
처부여종경(呂宗敬)
외조부장균(張均)

[상세내용]

남계당(南季堂)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 문신. 자는 희정(希正)이고,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증조부는 남심(南深), 조부는 남상명(南尙明), 부친은 남지(南輊)이다. 외조부는 장균(張均), 처부는 여종경(呂宗敬)이다.

1466년(세조 12) 병술(丙戌) 고성춘시(高城春試) 삼등(三等) 9위로 급제하고, 1479년(성종 10) 기해(己亥) 중시(重試) 병과(丙科) 1위로 급제하였다.

1468년(세조 14)에 사관(史官)을 지내고, 1469년(예종 1) 주서(注書)실록청편수관 교리(編修官校理)를 지냈다. 1472년(성종 3) 수찬관(修撰官)으로서 『예종실록(睿宗實錄)』을 편찬한 공으로 향표리(鄕表裏)를 하사받았으며, 이어서 지평(持平)헌납(獻納)제주경차관(濟州敬差官)을 지냈다. 담양부사(潭陽府使)를 역임할 때 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어 성종이 직접 글을 내려 격려하고 포상하였다. 1486(성종 17) 겸 사헌부집의(兼司憲府執義)이 되었으며 안변부사(安邊府使)를 거쳐 1493(성종 24) 남원부사(南原府使)가 되었다.

지방관으로 있을 때, 청렴하고 일을 간결하게 처리하여 매사에 그르침이 없었다. 또한 언제나 기근을 대비하여 식량을 비축하였기 때문에, 가뭄이 크게 들었을 때에도 백성을 구휼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성종실록』의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1492년(성종 23) 10월 26일 기사에서 영사(領事) 허종(許琮)성종에게 '정사를 행함이 관민(官民)에 편하니,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많이 얻을 수 없다'고 칭찬한 일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지은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도 그의 행적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담양삼강록
예종실록
성종실록
大東韻府群玉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jsp)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