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金玄錫)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40D604C11DU9999X0 |
| 자(字) | 태초(太初) |
| 호(號) | 여병재(如甁齋) |
| 생년 | ?(미상)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전기 |
| 본관 | 김녕(金寧)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충의공(忠毅公) |
| 부 | 김문기(金文起) |
| 조부 | 김관(金觀) |

[상세내용]
김현석(金玄錫)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태초(太初), 호는 여병재(如甁齋).
조부는 이조판서 김관(金觀)이고, 부친은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 초명 孝起)이다.
김현석(金玄錫)은 거창(居昌)과 양지현감(陽知縣監)을 거쳐 영월군수(寧越郡守)를 역임하였다. 그는 아버지인 김문기가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이조판서로 있으면서 내외종간(內外從間)인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과 더불어 1456년(세조 2) 단종(端宗)을 복위시키려다 탄로되어 그 해 6월 8일 군기감(軍器監) 앞에서 처형되자 아버지를 따라 순절하였다.
아들 김충주(金忠柱)와 손자 김현남(金玄南), 고손 김약전(金約前) 등이 모두 충효로 가문을 빛내어 1763년(영조 39) ‘5세충효(五世忠孝)’의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1791년(정조 15) 장릉배식단(莊陵配食壇)에 배향되었다.
조부는 이조판서 김관(金觀)이고, 부친은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 초명 孝起)이다.
김현석(金玄錫)은 거창(居昌)과 양지현감(陽知縣監)을 거쳐 영월군수(寧越郡守)를 역임하였다. 그는 아버지인 김문기가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이조판서로 있으면서 내외종간(內外從間)인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과 더불어 1456년(세조 2) 단종(端宗)을 복위시키려다 탄로되어 그 해 6월 8일 군기감(軍器監) 앞에서 처형되자 아버지를 따라 순절하였다.
아들 김충주(金忠柱)와 손자 김현남(金玄南), 고손 김약전(金約前) 등이 모두 충효로 가문을 빛내어 1763년(영조 39) ‘5세충효(五世忠孝)’의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1791년(정조 15) 장릉배식단(莊陵配食壇)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집필자]
김은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