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신(任輔臣)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84BCF4C2E0D1558X0 |
자(字) | 필중(弼仲) |
호(號) | 포초(圃樵) |
생년 | ?(미상) |
졸년 | 1558(명종 13)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풍천(豊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임추(任樞) |
처부 | 회(懷) |
저서 | 『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 |
[상세내용]
임보신(任輔臣)
미상∼1558년(명종 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필중(弼仲), 호는 포초(圃樵). 임추(任樞)의 아들이며, 익양군(益陽君) 회(懷)의 사위이다.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경(典經)‧저작‧박사‧부수찬‧부교리 등을 거쳐, 1551년(명종 6) 교리를 지냈다.
1547년부터 3년 동안 이조좌랑을 역임한 뒤 1551년 수안군수를 거쳐, 강원도‧전라도의 암행어사로 나갔다.
1554년 장악원정‧승문원판교 등을 거쳐, 1557년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익양군의 사위라는 이유로 비변사관리로 등용하려 하자 이를 거절하였고, 경연석상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소학』의 보급 및 실천을 주장하였으며,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종실에 불교진흥정책을 지원하도록 명하였을 때 이에 반대하여 문정왕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저서로는 『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이 있다.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경(典經)‧저작‧박사‧부수찬‧부교리 등을 거쳐, 1551년(명종 6) 교리를 지냈다.
1547년부터 3년 동안 이조좌랑을 역임한 뒤 1551년 수안군수를 거쳐, 강원도‧전라도의 암행어사로 나갔다.
1554년 장악원정‧승문원판교 등을 거쳐, 1557년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익양군의 사위라는 이유로 비변사관리로 등용하려 하자 이를 거절하였고, 경연석상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소학』의 보급 및 실천을 주장하였으며,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종실에 불교진흥정책을 지원하도록 명하였을 때 이에 반대하여 문정왕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저서로는 『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이 있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집필자]
이태진(李泰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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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