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맹(李希孟)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D76CB9F9U9999X0 |
자(字) | 백순(白淳) |
호(號) | 익재(益齋) |
시호(諡號) | 문안(文安) |
생년 | 1475(성종 6) |
졸년 | 1516(중종 11)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고부(古阜)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종근(李從根) |
[상세내용]
이희맹(李希孟)
1475년(성종 6)~1516년(중종 1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고부(古阜). 자는 백순(白淳), 호는 익재(益齋). 이종근(李從根)의 아들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사림파의 한 사람이다. 성균관 학생으로 있을 때부터 문장과 인품으로 명망을 얻었다.
1492년(성종 23)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이듬해 홍문관수찬에 임명되어 경연검토관(經筵檢討官)을 겸직하면서 양민들의 군역이 과중함을 논하고 그 시정을 건의하였다.
1494년 연산군이 즉위한 뒤 한직에 밀려났다가 조정을 떠났다. 중종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1508년(중종 3) 사헌부장령‧사간원사간으로 재직하면서 훈구파 대신‧공신들의 사치와 횡포를 비판하였다.
1510년 형조참의‧좌부승지를 거쳐 관찰사로 나갔고, 1512년 도승지, 이듬해 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고부의 도계사(道溪祠)에 향사되었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사림파의 한 사람이다. 성균관 학생으로 있을 때부터 문장과 인품으로 명망을 얻었다.
1492년(성종 23)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이듬해 홍문관수찬에 임명되어 경연검토관(經筵檢討官)을 겸직하면서 양민들의 군역이 과중함을 논하고 그 시정을 건의하였다.
1494년 연산군이 즉위한 뒤 한직에 밀려났다가 조정을 떠났다. 중종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1508년(중종 3) 사헌부장령‧사간원사간으로 재직하면서 훈구파 대신‧공신들의 사치와 횡포를 비판하였다.
1510년 형조참의‧좌부승지를 거쳐 관찰사로 나갔고, 1512년 도승지, 이듬해 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고부의 도계사(道溪祠)에 향사되었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中宗實錄
國朝榜目
中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영춘(李迎春)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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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6-07 | 紀年便攷를 참고하여 생졸년 1475(성종 6 을미)~1516(중종 11 병자)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