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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동(柳辰仝)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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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숙춘(叔春)
호(號)죽당(竹堂)
시호(諡號)정민(貞敏)
생년1497(연산군 3)
졸년1561(명종 16)
시대조선전기
본관진주(晉州[土])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유신동(柳辰仝)
1497년(연산군 3)∼1561년(명종 1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土]). 자는 숙춘(叔春), 호는 죽당(竹堂).

1522년(중종 17) 사마시를 거쳐 153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승정원에 들어가서 주서가 되어 스스로를 엄격히 지키고 권귀(權貴)에 아부하지 않아 탄핵되기도 하였다.

1537년 사헌부감찰이 되고 이어 병조좌랑춘추관기사관이 되었고, 시강원사서가 되는 등 조정의 총애를 받았다.

1538년 사간원정언을 거쳐 사헌부지평시강원문학홍문관교리응교장령집의 등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다.

1543년 부제학에 올랐고, 이듬해 승정원동부승지우승지, 1546년 좌승지도승지를 차례로 거쳤다.

1548년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공조참판, 이듬해 전라도관찰사를 지내고, 1550년 성절사(聖節使)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경기도평안도 관찰사를 지냈고, 1554년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이때 경연(經筵)에서 『주역』을 진강하게 되어 『주역』에 밝은 자를 고르게 됨으로써 다시 기용되었다.

이어서 한성부좌윤함경도관찰사를 거쳐 공조판서에 오르고, 1559년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직하던 중 중풍을 얻어 사직을 청하니 왕이 공조판서를 바꾸고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 임명하자 그는 “일을 하지 않는데 어찌 그 녹(祿)을 먹을 수 있는가?” 하며 받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문사(文詞)에 뛰어났고, 죽화(竹畵)를 잘 그렸다. 글씨에도 뛰어나 남대문의 ‘숭례문(崇禮門)’을 썼다는 설도 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國朝人物考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집필자]

강영철(姜英哲)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