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효헌(黃孝獻)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69D6A8D5CCB1491X0 |
자(字) | 숙공(叔貢) |
호(號) | 현옹(玄翁) |
호(號) | 신재(愼齋) |
생년 | 1491(성종 22) |
졸년 | 1532(중종 27)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장수(長水)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황관(黃灌) |
고조부 | 황희(黃喜) |
출신지 | 한성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황효헌(黃孝獻)
1491년(성종 22)∼1532년(중종 2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숙공(叔貢), 호는 축옹(蓄翁)‧현옹(玄翁)‧신재(愼齋). 한성 출신.
영의정 황희(黃喜)의 현손이며, 부사 황관(黃灌)의 아들이다.
진사로서 1514년(중종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홍문관정자가 되어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홍문관직제학‧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1526년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대사성과 황해도관찰사, 1528년 이조참의, 그리고 이조참판에 올라 1530년 이행(李荇) 등과 함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32년 안동부사로 외보(外補)되었다가 갑자기 죽었다.
사람됨이 담론(談論)을 좋아하고 풍의(風儀)가 아름다워 귀공자 같았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문장에 뛰어났으므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많은 사람이 애석하게 여겼다 한다.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에 제향되었다.
영의정 황희(黃喜)의 현손이며, 부사 황관(黃灌)의 아들이다.
진사로서 1514년(중종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홍문관정자가 되어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홍문관직제학‧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1526년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대사성과 황해도관찰사, 1528년 이조참의, 그리고 이조참판에 올라 1530년 이행(李荇) 등과 함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32년 안동부사로 외보(外補)되었다가 갑자기 죽었다.
사람됨이 담론(談論)을 좋아하고 풍의(風儀)가 아름다워 귀공자 같았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문장에 뛰어났으므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많은 사람이 애석하게 여겼다 한다.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稗官雜記
國朝榜目
稗官雜記
[집필자]
윤용혁(尹龍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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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