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인(慶世仁)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BDC138C778B1491X0 |
자(字) | 심중(心仲) |
호(號) | 경재(敬齋) |
생년 | 1491(성종 22)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경상(慶祥) |
저서 | 『경재유고』 |
저서 | 『경연강독록(經筵講讀錄)』 |
[관련정보]
[상세내용]
경세인(慶世仁)
1491년(성종 22)∼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심중(心仲), 호는 경재(敬齋).
부친은 군수 경상(慶祥)이다.
어려서부터 조광조(趙光祖)‧김대성(金大成)과 막역하였으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1519년(중종 14) 현량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관에 들어갔다. 이어 정자‧저작을 역임하고, 박사가 되어 경연에서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기에 힘썼다. 같은해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된 뒤 세상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책을 읽고 읊으며 지냈다.
형 경세신(慶世臣)이 정신병이 있어 자살했는데, 이를 이유로 김안로(金安老)에게 모함을 받고 명천(明川)으로 귀양갔다.
또한, 1535년에는 노비를 가지고 다투었다 하여 좌의정 오결(吳潔)의 탄핵을 받았다.
1538년 석방되어 파주의 두문리에 농막을 짓고 살면서 ‘두문농은(斗文農隱)’이라 이름하고 평생을 마쳤다.
저서로 『경재유고』‧『경연강독록(經筵講讀錄)』이 있다.
부친은 군수 경상(慶祥)이다.
어려서부터 조광조(趙光祖)‧김대성(金大成)과 막역하였으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1519년(중종 14) 현량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관에 들어갔다. 이어 정자‧저작을 역임하고, 박사가 되어 경연에서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기에 힘썼다. 같은해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된 뒤 세상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책을 읽고 읊으며 지냈다.
형 경세신(慶世臣)이 정신병이 있어 자살했는데, 이를 이유로 김안로(金安老)에게 모함을 받고 명천(明川)으로 귀양갔다.
또한, 1535년에는 노비를 가지고 다투었다 하여 좌의정 오결(吳潔)의 탄핵을 받았다.
1538년 석방되어 파주의 두문리에 농막을 짓고 살면서 ‘두문농은(斗文農隱)’이라 이름하고 평생을 마쳤다.
저서로 『경재유고』‧『경연강독록(經筵講讀錄)』이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海東名臣錄
國朝人物志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海東名臣錄
國朝人物志
[집필자]
박익환(朴翼煥)
대표명 | 경세인(慶世仁) |
성명 | 경세인(慶世仁) |
자 | 심중(心仲), 인중(仁仲) |
호 | 경재(敬齋), 두문농은(斗文農隐) |
성명 : "경세인(慶世仁)"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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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