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두남(太斗南)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0DCB450B0A8B1486X0 |
자(字) | 망이(望而) |
호(號) | 서암(西菴) |
생년 | 1486(성종 17) |
졸년 | 1536(중종 31)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영순(永順)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태효정(太孝貞) |
저서 | 『쇄언(瑣言)』 |
[관련정보]
[상세내용]
태두남(太斗南)
1486년(성종 17)∼1536년(중종 3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순(永順). 자는 망이(望而), 호는 서암(西菴).
발해국왕 대조영(大祚榮)의 후손으로, 태효정(太孝貞)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기재(奇才)가 남달랐으므로, 김양진(金揚震)이 그를 데려와 기르고 훈회(訓誨)하였다.
1513년(중종 8)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정랑과 개령현감‧경상도도사‧사예‧사도시첨정‧전라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장령‧남원부사‧선산부사, 직강‧사섬시정(司贍寺正)‧집의 등을 지냈다.
1536년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어 춘추관편수관을 겸임하였다.
이때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산 스승 김양진의 장례를 정성껏 보살폈다가 미움을 받아 성주목사로 좌천되어 재직중 51세로 죽었다.
담론을 잘하였으며, 시문에 뛰어났다. 옥천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쇄언(瑣言)』이 있다.
발해국왕 대조영(大祚榮)의 후손으로, 태효정(太孝貞)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기재(奇才)가 남달랐으므로, 김양진(金揚震)이 그를 데려와 기르고 훈회(訓誨)하였다.
1513년(중종 8)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정랑과 개령현감‧경상도도사‧사예‧사도시첨정‧전라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장령‧남원부사‧선산부사, 직강‧사섬시정(司贍寺正)‧집의 등을 지냈다.
1536년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어 춘추관편수관을 겸임하였다.
이때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산 스승 김양진의 장례를 정성껏 보살폈다가 미움을 받아 성주목사로 좌천되어 재직중 51세로 죽었다.
담론을 잘하였으며, 시문에 뛰어났다. 옥천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쇄언(瑣言)』이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원영환(元永煥)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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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