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호(鄭世虎)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138D638B1486X0 |
자(字) | 자인(子仁) |
호(號) | 서계(西溪) |
시호(諡號) | 효간(孝簡) |
생년 | 1486(성종 17) |
졸년 | 1563(명종 18)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하동(河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상조(鄭尙祖) |
조부 | 정인지(鄭麟趾)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세호(鄭世虎)
1486년(성종 17)∼1563년(명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자인(子仁), 호는 서계(西溪).
정인지(鄭麟趾)의 손자로, 호군 정상조(鄭尙祖)의 아들이다. 선조의 외할아버지이다.
1519년(중종 1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의정부사인에 재직중, 홍우룡(洪遇龍)을 심문할 때 담당관인 사헌부집의 오결(吳潔)의 집에까지 가서 구제하다가 1531년 경상도 곤양에 장류(杖流)되었다.
이듬해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다음해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부승지‧홍문관부제학을 거쳐 1552년(명종 7) 호조판서가 되었다.
이때 모리배와 결탁하여 방납(防納)하여 그 이익을 나누어 차지하고, 또 상인과 공모하여 각 관청에 납곡(納穀)하고, 예빈시(禮賓寺)의 전복(典僕)을 왜관고직(倭館庫直)에 임명하여 은냥(銀兩)을 무역하고, 국고물(國庫物)의 도절범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죄과를 눈감아주는 등 비루한 행동이 많아 양사로부터 탄핵을 받았으나 중종은 파직에 그치게 하였다.
1559년 지중추부사에 오르고, 수릉(守陵)의 공로가 있다 하여 숭정대부에 승자(陞資)되었다.
정인지(鄭麟趾)의 손자로, 호군 정상조(鄭尙祖)의 아들이다. 선조의 외할아버지이다.
1519년(중종 1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의정부사인에 재직중, 홍우룡(洪遇龍)을 심문할 때 담당관인 사헌부집의 오결(吳潔)의 집에까지 가서 구제하다가 1531년 경상도 곤양에 장류(杖流)되었다.
이듬해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다음해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부승지‧홍문관부제학을 거쳐 1552년(명종 7) 호조판서가 되었다.
이때 모리배와 결탁하여 방납(防納)하여 그 이익을 나누어 차지하고, 또 상인과 공모하여 각 관청에 납곡(納穀)하고, 예빈시(禮賓寺)의 전복(典僕)을 왜관고직(倭館庫直)에 임명하여 은냥(銀兩)을 무역하고, 국고물(國庫物)의 도절범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죄과를 눈감아주는 등 비루한 행동이 많아 양사로부터 탄핵을 받았으나 중종은 파직에 그치게 하였다.
1559년 지중추부사에 오르고, 수릉(守陵)의 공로가 있다 하여 숭정대부에 승자(陞資)되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
號譜
明宗實錄
國朝榜目
號譜
[집필자]
이재호(李載琥)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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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