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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환(韓世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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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공서(公瑞)
시호(諡號)공간(恭簡)
생년1470(성종 1)
졸년1522(중종 17)
시대조선전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한운(韓運)
외조부이신(李愼)

[상세내용]

한세환(韓世桓)
1470년(성종 1)∼1522년(중종 17).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공서(公瑞).

부친은 첨정 한운(韓運)이며, 모친은 이신(李愼)의 딸이다.

1492년(성종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495년(연산군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권지정자를 거쳐 정언이 되었다.

그뒤 예조좌랑병조좌랑지평병조정랑승문원부응교‧의정부검상사인 등을 거쳐, 1499년 봉교로서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1년 질정관(質正官)으로 천추사(千秋使)를 따라 명나라에 다녀와서 곧 돈녕부정이 되었다. 연산군의 난정이 심해지자 직언을 자주 하여 왕의 미움을 받아 승진되지 못하였다. 중종반정 이후 1507년(중종 2) 대사간이 되었고, 이어 동부승지도승지이조참의가 되었다.

그뒤 함경도관찰사로 나가 기근에 허덕이는 도민을 구휼(救恤)하였고, 돌아와서 한성부우윤을 거쳐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그뒤 이조판서 겸 도총관을 지내고 지돈녕부사가 되었다.

1518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좌참찬 겸 지춘추관사가 되었으며, 1520년 다시 대사간이 되었고, 1522년 지중추부사를 거쳐 호조판서가 되었다.

이때 중국사신을 접대하다가 과로로 죽었다. 품성이 온순‧겸각(謙恪)하였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