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방언(趙邦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BC29C5B8B1469X0 |
자(字) | 빈지(贇之) |
생년 | 1469(예종 1) |
졸년 | 1537(중종 32)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한양(漢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수창(趙壽昌) |
외조부 | 박흔(朴昕) |

[관련정보]
[상세내용]
조방언(趙邦彦)
1469년(예종 1)∼1537년(중종 3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빈지(贇之).
부친은 조수창(趙壽昌)이며, 모친은 박흔(朴昕)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생원으로서 선릉(宣陵: 성종의 능) 옆에 사찰을 짓는 것이 부당하다고 상소하였다.
1506년(중종 1)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정언이 되고 헌납‧전한 등을 거쳤다.
1515년 장악원정을 겸하고, 1520년 대사간에 승진하여, 그해 9월에 상소하여 신진들이 붕당을 지어 자기들과 취향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폐단을 논박하였다.
1523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갔고, 다음해 돌아와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1525년 형조참의를 지낸 뒤 이듬해 부제학‧좌승지를 역임하였다.
이어 대사헌을 거쳐 1528년 전라도관찰사, 예조와 공조의 참판이 되고, 이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김안로(金安老)에게 아부하였다는 죄로 파직당하였다가 예조참판에 다시 등용되었다.
1532년 심정(沈貞)의 일당으로 몰려 사사(賜死)되었다.
부친은 조수창(趙壽昌)이며, 모친은 박흔(朴昕)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생원으로서 선릉(宣陵: 성종의 능) 옆에 사찰을 짓는 것이 부당하다고 상소하였다.
1506년(중종 1)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정언이 되고 헌납‧전한 등을 거쳤다.
1515년 장악원정을 겸하고, 1520년 대사간에 승진하여, 그해 9월에 상소하여 신진들이 붕당을 지어 자기들과 취향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폐단을 논박하였다.
1523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갔고, 다음해 돌아와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1525년 형조참의를 지낸 뒤 이듬해 부제학‧좌승지를 역임하였다.
이어 대사헌을 거쳐 1528년 전라도관찰사, 예조와 공조의 참판이 되고, 이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김안로(金安老)에게 아부하였다는 죄로 파직당하였다가 예조참판에 다시 등용되었다.
1532년 심정(沈貞)의 일당으로 몰려 사사(賜死)되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中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이동길(李東吉)
명 : "방언(邦彥)"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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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