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숙(洪淑)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D64DC219FFFFB1464X0 |
자(字) | 순부(純夫) |
시호(諡號) | 장희(莊僖) |
생년 | 1464(세조 10) |
졸년 | 1538(중종 33)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남양(南陽[土])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홍귀연(洪貴演) |
조부 | 홍익생(洪益生) |
공신호 | 추성정난공신(推誠定難功臣) |
[상세내용]
홍숙(洪淑)
1464년(세조 10)∼1538년(중종 3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土]). 자는 순부(純夫).
동지중추부원사 홍익생(洪益生)의 손자로, 홍귀연(洪貴演)의 아들이다.
1492년(성종 23) 사마시에 합격한 뒤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예문관검열을 거쳐 정언‧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중종반정에 가담, 좌승지로 이과(李顆)의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워 추성정난공신(推誠定難功臣) 3등에 책록, 당원군(唐原君)에 봉하여졌다.
1508년 호조참판을 거쳐, 대사헌‧경기도관찰사‧우참찬을 지낸 뒤 1517년 지중추부사‧한성부판윤이 되고 형조판서로 조광조(趙光祖) 등을 숙청하는 데 앞장섰다.
이듬해 예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올랐으나 이해 김안로(金安老) 일당이 날조한 작서지변(灼鼠之變)에 연루, 삭직된 뒤 과천으로 추방되었다가 1538년 복관되었다.
전고(典故)에 밝아 정치를 함에 대체를 잃지 않았고, 스스로의 몸가짐에 있어서도 엄정하면서도 관후하였다. 특히 효성이 돈독하였다.
시호는 장희(莊僖)이다.
동지중추부원사 홍익생(洪益生)의 손자로, 홍귀연(洪貴演)의 아들이다.
1492년(성종 23) 사마시에 합격한 뒤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예문관검열을 거쳐 정언‧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중종반정에 가담, 좌승지로 이과(李顆)의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워 추성정난공신(推誠定難功臣) 3등에 책록, 당원군(唐原君)에 봉하여졌다.
1508년 호조참판을 거쳐, 대사헌‧경기도관찰사‧우참찬을 지낸 뒤 1517년 지중추부사‧한성부판윤이 되고 형조판서로 조광조(趙光祖) 등을 숙청하는 데 앞장섰다.
이듬해 예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올랐으나 이해 김안로(金安老) 일당이 날조한 작서지변(灼鼠之變)에 연루, 삭직된 뒤 과천으로 추방되었다가 1538년 복관되었다.
전고(典故)에 밝아 정치를 함에 대체를 잃지 않았고, 스스로의 몸가짐에 있어서도 엄정하면서도 관후하였다. 특히 효성이 돈독하였다.
시호는 장희(莊僖)이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명 : "숙(淑)"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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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