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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정(趙益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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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이원(而元)
시호(諡號)공숙(恭肅)
생년1436(세종 18)
졸년1498(연산군 4)
시대조선전기
본관풍양(豊壤)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온지(趙溫之)
조부조안평(趙安平)
공신호익대공신(翊戴功臣)

[상세내용]

조익정(趙益貞)
1436년(세종 18)∼1498년(연산군 4).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이원(而元). 공조좌랑 조안평(趙安平)의 손자로, 한산군(漢山君) 조온지(趙溫之)의 아들이다.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465년(세조 1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1466년 『동국통감』의 편찬에 수찬낭관으로서 참여하였다.

1467년 예문관봉교승정원주서를 지냈고, 1468년(예종 즉위) 10월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69년 사헌부지평행세자시강원문학을 거쳐 춘추관수찬관으로 『세조실록』 편수에 참여하였고, 1470년(성종 1) 형조참의가 되었다.

1481년에 한성부좌윤으로 한평군(漢平君)에 봉하여지고, 이듬해 이조참판이 되었다.

1489년 호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이어 다시 대사헌예조참판경상우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1494년 12월 사은사에 배명(拜命)되었으나 성종의 죽음으로 중지하였다.

1495년(연산군 1) 한성부좌윤, 같은해 8월 공조참판, 1497년 오위도총부부총관을 겸임하고, 1499년 춘추관동지관사(春秋館同知館事)『성종실록』의 편수에 참여하였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문장이 뛰어나 성종대의 문예에 공헌하였다. 시호는 공숙(恭肅)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世祖實錄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한충희(韓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