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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명(金順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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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거이(居易)
시호(諡號)공양(恭襄)
생년1435(세종 17)
졸년1487(성종 18)
시대조선전기
본관청풍(淸風)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길통(金吉通)
공신호정충출기적개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공신호좌리공신

[상세내용]

김순명(金順命)
1435년(세종 17)∼1487년(성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거이(居易).

부친은 호조판서 김길통(金吉通)이다.

1453년(단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6년(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합격, 교서관정자가 되었다. 이어 승정원주서성균관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 등을 역임했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도총사(都摠使)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종사관으로 출정하여 공을 세우고 정충출기적개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2등에 책훈되어 군자감정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명나라 사신의 청으로 자계(資階)가 올라 당상관이 되었다.

1469년(예종 1) 장례원판결사를 거쳐 우부승지로 전임되었다가 1471년 성종 옹립의 공으로 좌리공신 4등에 책훈되고, 좌부승지를 거쳐 이듬해 예조참판이 되었다.

1475년(성종 6)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477년 내직으로 들어와 형조호조예조참판을 역임하고, 1479년 청릉군(淸陵君)에 봉해졌다.

1481년 의금부동지사로 있을 때 사형에 대한 오판으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황해도관찰사로 나갔으나, 내수사의 종인 두을언(豆乙彦)을 장살한 혐의로 파직되었다.

1484년 고신을 돌려받고 다시 청릉군에 봉해졌다. 글씨에 뛰어났다. 시호는 공양(恭襄)이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睿宗實錄
成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차문섭(車文燮)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