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파(李坡)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C774D30CFFFFB1434X0
자(字)평중(平仲)
호(號)송국재(松菊齋)
호(號)소은(蘇隱)
시호(諡號)명헌(明憲)
생년1434(세종 16)
졸년1486(성종 17)
시대조선전기
본관한산(韓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계전(李季甸)
증조부이색(李穡)

[상세내용]

이파(李坡)
1434년(세종 16)∼1486년(성종 17).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평중(平仲), 호는 송국재(松菊齋)소은(蘇隱).

이색(李穡)의 증손이며, 영중추원사 이계전(李季甸)의 아들이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이개(李塏)는 사촌 형이다.

1450년(세종 32) 진사가 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저작랑(校書館著作郞)집현전박사응교지승문원사집의보덕 등을 거쳐, 1462년(세조 8) 판내자예빈사(判內資禮賓事)예문관을 겸하였다.

이듬해 『동국통감(東國通鑑)』 찬수에 참여하였고, 이 해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우승지를 거쳐 1465년 도승지공조참의를 지냈고, 이듬해 한성부좌윤으로 발영시(拔英試)에 2등으로 급제하였다.

1467년 호조참판을 거쳐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대사성이 되고, 예종이 즉위하자 승습사(承襲使)명나라에 다녀왔다.

1475년(성종 6) 이조참판이 되어 『삼국사절요』를 찬진하였으며, 이해 덕종의 부묘문제(祔廟問題)가 일어나자 부묘에 적극 반대하였다.

이듬해 지중추원사정조사가 되어 또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77년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평안도로 이민시킨 남도의 백성들이 모두 흩어지자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480년 다시 지중추부사 겸 도총관예문관제학이 되고 이어서 예조판서가 되었다. 예조판서로 재직 때 그 직무를 수행함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왕으로부터 서각띠〔犀角帶〕를 하사받았으며, 품계도 숭정(崇政)으로 승진되었다.

1485년 좌참찬을 거쳐서 우찬성이 되고, 이어서 좌찬성에 이르렀으나 폭음으로 인하여 죽었다.

젊은 나이에 벼슬이 높았으나 교만하거나 뽐내는 기색이 없었다. 또한, 자질이 호탕하고 활달하며 총명이 남보다 뛰어나고 특히 담론을 잘 하였다 한다.

성리학에 밝았고 고제(古制)에 해박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시호는 명헌(明憲)이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睿宗實錄
成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강영철(姜英哲)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