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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녹생(田祿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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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맹경(孟耕)
호(號)야은(壄隱)
생년1318(충숙왕 5)
졸년1375(우왕 1)
시대고려후기
본관담양(潭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저서『무은집』
공신호추충찬화보리공신(推忠贊化輔理功臣)

[상세내용]

전녹생(田祿生)
1318년(충숙왕 5)∼1375년(우왕 1). 고려의 문신.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맹경(孟耕), 호는 야은(野隱).

충혜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제주사록(濟州司錄)에 임명되었다가 들어와 전교(典校)교감(校勘)이 되었고, 정동성(征東省)의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347년(충목왕 3) 정치도감(整治都監)의 교감으로서 좌랑 서호(徐浩)와 함께 기황후(奇皇后)의 친척동생인 기삼만(奇三萬)의 죄를 다스리다가 그가 옥사하였으므로 잠시 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1357년(공민왕 6)에 왕이 염철별감(鹽鐵別監)을 여러 도에 나누어 보내니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서 우간의 이색(李穡), 우사간 이보림(李寶林), 좌사간 정추(鄭樞) 등과 함께 그 폐단을 논하여 염철별감을 파견하지 말도록 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343년 전라안찰사로 홍건적의 침입을 피하여 왕이 남행하자, 왕을 호종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었다.

그뒤 벼슬을 여러 번 옮겨 좌상시(左常侍)가 되고, 감찰대부(監察大夫)를 거쳐 대사헌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내고,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이르러 추충찬화보리공신(推忠贊化輔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1371년에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지공거(知貢擧)이색과 함께 진사를 선발하였다.

1373년에 서북면도순문사로서 충혜왕의 얼자(孽子)라고 칭하던 석기(釋器)이안(李安)정보(鄭寶) 등과 어울려 반역을 꾀하였다는 명목으로 체포하여 목을 베었다.

1375년(우왕 1)에 간관 이첨(李詹)전백영(全伯英)이인임(李仁任)지윤(池奫)을 벨 것을 청하니 왕이 이첨과 전백영을 옥에 가두고, 최영(崔瑩)과 지윤을 시켜 국문하게 하였다. 이들의 말이 박상충(朴尙衷)전녹생에게 관련되므로 최영이 이들을 심하게 국문하고 귀양을 보냈는데, 모두 가던 도중에 죽었다.

저서로 『무은집』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野隱集

[집필자]

강진철(姜晉哲)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