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池奫)
[상세내용]
지윤(池奫)
미상∼1377년(우왕 3). 고려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
무녀(巫女)의 소생으로서 처음 군졸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차 무공을 세워 공민왕 말년에는 판숭경부사(判崇敬府事)가 되었으며, 서북면원수‧경상도상원수 등 출정군(出征軍)의 지휘관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우왕 때에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가 되어 재상에 올랐는데, 당시의 권신(權臣)인 이인임(李仁任)과 한패가 되어 친원정책을 비판하는 임박(林樸)‧정도전(鄭道傳)‧박상충(朴尙衷) 등을 탄압하였다. 관직과 옥(獄)을 팔아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심복들을 대간에 배치, 그들을 사주하여 위복(威福)을 부렸다.
그러나 그의 아들 익겸(益謙)을 왜구토벌의 지휘관으로 내보내는 문제 등으로 점차 이인임과 사이가 나빠졌는데, 기회를 엿보던 이인임이 김승득(金承得)‧이열(李悅)‧화지원(華之元) 등 자신의 심복들을 정부비방죄로 몰아 유배시키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지신사(知申事) 김윤승(金允升)과 공모하여 이인임‧최영 등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실패함으로써 가족‧당여(黨與)와 함께 처형되었다.
무녀(巫女)의 소생으로서 처음 군졸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차 무공을 세워 공민왕 말년에는 판숭경부사(判崇敬府事)가 되었으며, 서북면원수‧경상도상원수 등 출정군(出征軍)의 지휘관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우왕 때에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가 되어 재상에 올랐는데, 당시의 권신(權臣)인 이인임(李仁任)과 한패가 되어 친원정책을 비판하는 임박(林樸)‧정도전(鄭道傳)‧박상충(朴尙衷) 등을 탄압하였다. 관직과 옥(獄)을 팔아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심복들을 대간에 배치, 그들을 사주하여 위복(威福)을 부렸다.
그러나 그의 아들 익겸(益謙)을 왜구토벌의 지휘관으로 내보내는 문제 등으로 점차 이인임과 사이가 나빠졌는데, 기회를 엿보던 이인임이 김승득(金承得)‧이열(李悅)‧화지원(華之元) 등 자신의 심복들을 정부비방죄로 몰아 유배시키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지신사(知申事) 김윤승(金允升)과 공모하여 이인임‧최영 등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실패함으로써 가족‧당여(黨與)와 함께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명 : "윤(奫)"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