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탁성(奇卓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30D0C1C131D1179X0 |
생년 | ?(미상) |
졸년 | 1179(명종 9)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행주(幸州)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공신호 | 추충협모좌리동덕공신(推忠協謀佐理同德功臣) |

[상세내용]
기탁성(奇卓誠)
미상∼1179년(명종 9). 고려의 무신. 본관은 행주(幸州).
모습이 단아하고 궁술과 마술(馬術)에 능하였다.
교위(校尉)가 되었는데, 말달리기와 격구(擊毬)를 즐겨하는 의종에게 뽑혀 견룡(牽龍: 御駕牽引)이 되어 왕의 곁에 있게 되었고, 또 권세가 있는 사람을 잘 섬겼으므로 곧 장군이 되었으며, 명종초에 거듭 승진하여 참지정사가 되었다.
1174년에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이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켜 절령(岊領: 慈悲嶺) 이북 40여성이 이에 호응하자, 윤인첨(尹鱗瞻)이 원수가 되고 그는 부원수가 되어 서경을 평정시키고 돌아오매 벼슬이 판병부사(判兵部事)에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판이부사(判吏部事)가 되었다.
그는 재물을 탐내어 관직을 팔아 어진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고,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가 다투어 나타났다. 그리하여 가신(家臣)인 고충전(高忠全)‧이인령(李仁齡) 등이 모두 간사하고 교활하며 탐학하고 야비하여 악명이 높았다.
마침 광평궁(廣平宮)이 오래 폐하여 주인이 없었으므로, 왕에게 청하여 거기에 거처하려 하였다. 그 처가 이를 말렸으나 듣지 않고 거기에 거처하기 수개월 만에 죽었다.
죽은 후 조위총의 난을 평정시킨 공으로 추충협모좌리동덕공신(推忠協謀佐理同德功臣)이 되어 각상(閣上)에 형상이 그려졌으며, 수태사(守太師)‧문하시중이 증직되었다.
모습이 단아하고 궁술과 마술(馬術)에 능하였다.
교위(校尉)가 되었는데, 말달리기와 격구(擊毬)를 즐겨하는 의종에게 뽑혀 견룡(牽龍: 御駕牽引)이 되어 왕의 곁에 있게 되었고, 또 권세가 있는 사람을 잘 섬겼으므로 곧 장군이 되었으며, 명종초에 거듭 승진하여 참지정사가 되었다.
1174년에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이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켜 절령(岊領: 慈悲嶺) 이북 40여성이 이에 호응하자, 윤인첨(尹鱗瞻)이 원수가 되고 그는 부원수가 되어 서경을 평정시키고 돌아오매 벼슬이 판병부사(判兵部事)에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판이부사(判吏部事)가 되었다.
그는 재물을 탐내어 관직을 팔아 어진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고,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가 다투어 나타났다. 그리하여 가신(家臣)인 고충전(高忠全)‧이인령(李仁齡) 등이 모두 간사하고 교활하며 탐학하고 야비하여 악명이 높았다.
마침 광평궁(廣平宮)이 오래 폐하여 주인이 없었으므로, 왕에게 청하여 거기에 거처하려 하였다. 그 처가 이를 말렸으나 듣지 않고 거기에 거처하기 수개월 만에 죽었다.
죽은 후 조위총의 난을 평정시킨 공으로 추충협모좌리동덕공신(推忠協謀佐理同德功臣)이 되어 각상(閣上)에 형상이 그려졌으며, 수태사(守太師)‧문하시중이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