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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왕후(神穆王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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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700(효소왕 9)
시대통일신라
활동분야왕실 > 비빈
김흠운(金欽運)

[상세내용]

신목왕후(神穆王后)
미상∼700년(효소왕 9). 신라 신문왕의 둘째 비.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미상이며, 일길찬(一吉飡) 김흠운(金欽運)의 딸이다.

첫째 비인 김씨가 그 아버지 흠돌(欽突)의 모반사건에 연좌되어 출궁당한 다음, 683년(신문왕 3) 5월 둘째왕비로 책봉되었다. 신목왕후의 책봉에 관한 구체적인 모습은 『삼국사기』에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즉, 신문왕은 683년 2월에 먼저 이찬(伊飡) 문영(文穎)파진찬(波珍飡) 삼광(三光)을 보내어 기일을 정하게 하고, 대아찬(大阿飡) 지상(知常)을 시켜 부인에게 납채(納采)하게 하였는바, 폐백이 15수레, 쌀‧술‧기름‧꿀‧간장‧포‧식혜가 135수레, 벼가 150수레나 되었다.

5월 7일에 문영개원(愷元)을 그 부인 집에 보내어 부인(夫人)으로 책봉하고, 그날 묘시(卯時)에 파진찬 대상(大常)손문(孫文)아찬(阿飡) 좌야(坐耶)길숙(吉叔) 등으로 하여금 각각 자신들의 처와 딸 및 급량부(及梁部)사량부(沙梁部)의 여자 30인씩을 데리고 부인을 영접해오게 하였는바, 부인이 탄 수레 좌우로 시종하는 관인과 노소 여자들이 매우 많았으며, 왕궁의 북문에 이르러 수레를 내려 궁궐로 들어왔다고 한다.

위 기사는 당시의 왕실혼례를 묘사한 대표적인 기사로 의미가 크다. 왕후의 소생인 이공(理恭)흥광(興光)은 각각 제32대 효소왕과 제33대 성덕왕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성덕왕신목왕후의 소생이 아니라 신문왕의 첫째 비인 김씨의 소생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羅皇福寺石塔金銅舍利函銘(黃壽永編著, 韓國金石遺文, 1985)
新羅五臺山事蹟과 聖德王의 卽位背景(辛鍾遠, 崔永禧先生華甲紀念韓國史學論叢, 1987)

[집필자]

김복순(金福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