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공(金忠恭)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40CDA9ACF5D0835X0 |
| 생년 | ?(미상) |
| 졸년 | 835(흥덕왕 10) |
| 시대 | 통일신라 |
| 활동분야 | 정치 > 정치가 |

| 부 | 인겸태자(仁謙太子) |
| 모 | 귀보부인(貴寶夫人) |
| 모 | 선의태후(宣懿太后) |

[상세내용]
김충공(金忠恭)
미상∼835년(흥덕왕 10). 신라통일기의 정치가.
원성왕의 손자이며, 민애왕의 아버지이고, 혜충대왕(惠忠大王)으로 추봉된 인겸태자(仁謙太子)의 넷째아들이다.
817년(헌덕왕 9)부터 821년까지 약 4년간 집사부시중(執事部侍中)을, 그리고 822년부터 835년까지 약 13년간 상대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므로 헌덕왕 13년에 죽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잘못이며, 흥덕왕 10년인 835년 이후에 죽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헌덕왕과 흥덕왕의 아우이기도 한 그는 이 두 왕 때에 집사부시중과 상대등 등을 역임하면서 822년에는 김헌창(金憲昌)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헌덕왕 때는 정사당(政事堂)에서 내외관(內外官)의 전주(銓注)를 맡아보면서 인사문제의 실권을 맡는 등 당시 최고의 정치적 실력자로 군림하였다. 그의 딸은 희강왕의 비인 문목왕후(文穆王后)이며, 아들인 김명(金明)은 희강왕을 자살하도록 하고 스스로 민애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민애왕은 즉위한 뒤 아버지인 김충공을 선강대왕(宣康大王)으로, 어머니인 귀보부인(貴寶夫人)을 선의태후(宣懿太后)로 추봉(追封)하였다. 『삼국유사』에서는 선강대왕을 선강갈문왕(宣康葛文王)으로 부르고 있다.
원성왕의 손자이며, 민애왕의 아버지이고, 혜충대왕(惠忠大王)으로 추봉된 인겸태자(仁謙太子)의 넷째아들이다.
817년(헌덕왕 9)부터 821년까지 약 4년간 집사부시중(執事部侍中)을, 그리고 822년부터 835년까지 약 13년간 상대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므로 헌덕왕 13년에 죽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잘못이며, 흥덕왕 10년인 835년 이후에 죽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헌덕왕과 흥덕왕의 아우이기도 한 그는 이 두 왕 때에 집사부시중과 상대등 등을 역임하면서 822년에는 김헌창(金憲昌)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헌덕왕 때는 정사당(政事堂)에서 내외관(內外官)의 전주(銓注)를 맡아보면서 인사문제의 실권을 맡는 등 당시 최고의 정치적 실력자로 군림하였다. 그의 딸은 희강왕의 비인 문목왕후(文穆王后)이며, 아들인 김명(金明)은 희강왕을 자살하도록 하고 스스로 민애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민애왕은 즉위한 뒤 아버지인 김충공을 선강대왕(宣康大王)으로, 어머니인 귀보부인(貴寶夫人)을 선의태후(宣懿太后)로 추봉(追封)하였다. 『삼국유사』에서는 선강대왕을 선강갈문왕(宣康葛文王)으로 부르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羅時代의 葛文王(李基白, 歷史學報 58, 1973; 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74)
新羅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李基東, 歷史學報 85, 1980;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 一潮閣, 1984)
新羅下代 均貞系의 王位繼承과 金陽(尹炳喜, 歷史學報 96, 1982)
三國遺事
新羅時代의 葛文王(李基白, 歷史學報 58, 1973; 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74)
新羅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李基東, 歷史學報 85, 1980;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 一潮閣, 1984)
新羅下代 均貞系의 王位繼承과 金陽(尹炳喜, 歷史學報 96, 1982)
[집필자]
김용선(金龍善)
| 대표명 | 김충공(金忠恭) |
| 명 | 충공(忠恭) |
명 : "충공(忠恭)"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