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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성(朴齊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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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집(聖執)
생년1840(헌종 6)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반남(潘南)
활동분야문신 > 문신
부박홍수(朴弘壽)
출신지서울

[상세내용]

박제성(朴齊晟)
1840년(헌종 6)∼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집(聖執). 서울 출신. 박홍수(朴弘壽)의 아들이다.

1869년(고종 6) 진사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73년 수찬(修撰)이 되어 대원군의 하야와 고종의 친정(親政)을 요구하는 최익현(崔益鉉)의 상소와 관련하여 사의를 표명한 옥당(玉堂)의 연차(聯箚)에 참여하였다.

이듬해도 대원군의 복권을 상소한 부사과(副司果) 이휘림(李彙林)의 국문(鞠問)을 요구하는 옥당의 연차에도 참가하였다. 같은해 부교리(副校理)에 임명된 뒤 김옥균(金玉均) 등과 함께 손영로(孫永老)사건, 신철균(申哲均)사건 등의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옥당의 연차에 계속 참여하였다.

1877년 부응교(副應敎), 이듬해 장령(掌令)이 되는 등 언론을 담당하여 활동하였다.

1880년에는 부묘도감(祔廟都監)의 부향친제시(祔享親祭時) 도청(都廳)에 참가하여 가자(加資)되었다.

1882년 안변부사로 재직할 당시 일본인이 조약을 어기고 개항장 밖으로 월경(越境)하여 조선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도한 행위를 하여 군중에게 난타당하고 그 중 1인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함경감사와 남병사(南兵使)가 장계를 올리자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에서 책임을 물어 덕원부사 정학묵(鄭學黙)과 함께 처벌받았다.

1885년에는 동부승지가 되었으나 왕명을 어긴 죄목으로 숙천부(肅川府)에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日省錄
國朝榜目
淸選考

[집필자]

하원호(河元鎬)
대표명박제성(朴齊晟)
성명박제성(朴齊晟)

성명 : "박제성(朴齊晟)"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哲仁王后祔廟都監儀軌提 調洪祐吉‧金壽鉉‧韓敦源‧尹滋承‧都廳黃耆淵‧朴齊晟 幷加 資 郞廳柳承根‧洪淳謨‧申觀朝‧尹慶求‧朴
咸鏡監營啓錄n1-6책 光緖七年二月三十日 承政院開坼節到付安邊府使朴齊晟牒呈內本府新里社中於 余地洞居無籍金成華與李德謙今
咸鏡監營啓錄n1-6책 光緖七年三月十二日 承政院開坼節到付安邊府使朴齊晟牒呈內去年十二月大雪 本府永豊社龍浦洞居無籍裴咸一
咸鏡監營啓錄n1-6책是白如乎安邊府二月內行社稷祭釋奠祭獻 官段同府府使朴齊晟未及到任三月內行厲祭獻 官段同府府使朴齊晟智陵寒食
咸鏡監營啓錄n1-6책亦謹依關辭發關 分付于各其地方官處是白加尼安邊府使朴齊晟 牒呈內本府永豊社龍浦洞壓死人七名別恤典常 賑稷各
咸鏡監營啓錄n1-6책 十七日巽時始役修改計料爲白乎旀安邊智陵 安邊府使朴齊晟文川地淑陵永興地濬源殿 永興府使金完秀差定奉審官使
咸鏡監營啓錄n1-6책始當日至次第奉審是白遣安邊地 智陵文川淑陵安邊府使朴齊晟永興地濬源殿永興府使金完秀差定奉審官使之替行是 白
咸鏡監營啓錄n1-6책初試去八月二十日生員初 試同月二十二日臣與安邊府使朴齊晟高原郡守 宋圭復眼同試取於咸興府客舍入格人等姓名年
咸鏡監營啓錄n1-6책院開坼謹依定式臣守令邊將薦擧單子各一度及安邊府 使朴齊晟德源府使鄭學默永興府使金完秀定平 府使柳冀命端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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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