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존중(鄭存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874C911B1721X0 |
자(字) | 사정(士靜) |
생년 | 1721(경종 1) |
졸년 | 1798(정조 2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동래(東萊)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홍상(鄭弘祥) |
조부 | 정형익(鄭亨益)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존중(鄭存中)
1721년(경종 1)∼1798년(정조 2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정(士靜).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후손으로, 판서 정형익(鄭亨益)의 손자이며, 정홍상(鄭弘祥)의 아들이다.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음사로서 참봉이 되었다가 누천(累遷)하여 1780년(정조 4) 광주목사(光州牧使)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중용되었다.
대사간‧승지‧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1791년 한성부판윤에 이어 개성부유수를 거쳐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가 언사(言事) 때문에 구성으로 유배되었다.
1년 뒤 향리로 방환되었다가 1795년 지의금부사를 거쳐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후손으로, 판서 정형익(鄭亨益)의 손자이며, 정홍상(鄭弘祥)의 아들이다.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음사로서 참봉이 되었다가 누천(累遷)하여 1780년(정조 4) 광주목사(光州牧使)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중용되었다.
대사간‧승지‧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1791년 한성부판윤에 이어 개성부유수를 거쳐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가 언사(言事) 때문에 구성으로 유배되었다.
1년 뒤 향리로 방환되었다가 1795년 지의금부사를 거쳐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國朝榜目
華泉集
國朝榜目
華泉集
[집필자]
반윤홍(潘允洪)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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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