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정세규(鄭世䂓)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815C138ADDCB1583X0
자(字)군칙(君則)
호(號)동리(東里)
시호(諡號)경헌(景憲)
생년1583(선조 16)
졸년1661(현종 2)
시대조선중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률(鄭慄)
조부정언신(鄭彦信)

[상세내용]

정세규(鄭世䂓)
1583년(선조 16)∼1661년(현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

좌의정 정언신(鄭彦信)의 손자로, 정률(鄭慄)의 아들이다.

1613년(광해군 5)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음(門蔭)으로 의금부도사를 거쳐 화순현령안산군수를 역임하였는데, 모두 혜정(惠政)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636년(인조 14)에 조신(朝臣)들의 추천을 받아 4품의 산질(散秩)에서 충청도관찰사로 특진되고, 그해 겨울 병자호란으로 왕이 남한산성에서 포위되자 근왕병을 이끌고 포위된 남한산성을 향하여 진격하다가 용인험천(險川)에서 적의 기습으로 대패하였다.

이때의 충성심으로 패군의 죄까지 면죄받고 전라감사개성유수를 거쳐 공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때 사헌부는 문음출신으로 특별한 정적(政績)이 없어 육경(六卿)이 될 수 없다고 강격히 반대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형조판서전주부윤대사헌호조판서함경감사지의금부사우참찬 등을 번갈아 역임하고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654년(효종 5) 강화유수가 되어 승천(昇天)연미(燕尾)갑곶(甲串)광성(廣城) 등에 진(鎭)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그의 출세에는 김육(金堉)의 뒷받침이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 문음출신으로 육경에 오른 가장 대표적 인물이다.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顯宗改修實錄
歸鹿集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명 : "세규(世規)"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震史記略v4規選輕銳進薄黔丹山賊自高峰壓擊一軍敗沒尼山縣監金弘翼藍浦縣監李慶善金井察訪李尙載公州營將崔震立皆死之世規墜於絶壑得脫○賊入南陽執府使尹棨速今跪大罵曰頭可斷膝不可屈賊斷其舌亂刃而去○二十九日體使坐北門建大將
震史記略v4斬獲○以兵亂姑停各陵享祭宗廟朔望奠○公忠監司鄭世規領兵結陣於險川上生雉三百首李義陪入竹山山城畏不敢前世規選輕銳進薄黔丹山賊自高峰壓擊一軍敗沒尼山縣監金弘翼藍浦縣監李慶善金井察訪李尙載公州營將崔震立皆死之世
震乘總v9卽山城相望之地賊自高峯壓擊一軍敗諸援兵皆潰沒尼城守金弘翼藍浦守李慶善金井察訪李尙載老武將崔震立皆死之世規墮於絶壑中一卒潛負得脫○賊入南陽府尹棨不屈死使尹棨被執不屈死棨字信伯在娠異夢少孤與弟集柔依外氏自勵爲
記聞v6覲王兵幾至城下而軍無紀律事甚疏虞賊覘知之迎擊於險川大敗之兵使李義培武將崔振立察訪金弘縣監李慶善等死之世規陷於積屍中得免○南陽府使尹啓爲賊所襲被執不屈而死○二十九日城中義士及御營軍等咸憤請戰體察使金瑬許之從
三官記v1勤王之師世規獨率兵入援至險川大敗堇以身免然圍城中初聞援兵之至筵中至有殿下之臣惟鄭世規一人之語以是有寵世規又是南人上方爲扶抑之論擢授銓長趙公錫胤嘗言其不協人望至是爲吏曹參判恥居其下上疏力辭復申前說上怒其伐異
三官記v1丙子間命卿宰別薦人才擧鄭世規多至五六世規時爲安城郡守特除忠淸監司是冬虜亂南漢圍危四方絶勤王之師世規獨率兵入援至險川大敗堇以身免然圍城中初聞援
國朝捷錄v01字立夫號懶庵東萊人己丑拜右辭連汝立獄謫死後伸佐郞振子判書世規祖世規黔丹山戰亡時與海伯東臯李相見公曰必大貴臨終以犀帶與之後果登台
國朝捷錄v01從犬號松山平壤人抗死後竪碑雷擊貞肅公父文台德裕祖文台挺曾文台世規
國朝人物志v2慄進士冤死獄中年二十八白沙李恒福作詩納壙中曰有口豈復言有淚不敢哭撫枕畏人窺呑聲潛飮泣慄子世規號東里蔭吏曹判書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