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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李愖)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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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신(子信)
생년1559(명종 14)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경율(趙景慄)
조부이효언(趙孝彦)
증조부이견손(趙堅孫)
외조부홍인우(洪仁佑)

[상세내용]

이심(李愖)
1559년(명종 14)∼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신(子信)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종실 강성정(江城正) 이견손(趙堅孫)의 증손으로, 조부는 이효언(趙孝彦)이고, 부친은 이경율(趙景慄)이다. 모친은 홍인우(洪仁佑)의 딸이다.

1593년(선조 26)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세자시강원설서가 되고, 이어서 사예를 역임하였다. 1595년(선조 28) 세자강원문학이 되었으며, 이듬해 홍문관부교리교리를 지냈다. 1597년(선조 30)에는 직강정언이 되었으며, 이듬해 교리문학을 지내는 등, 오랜 기간 시독관(侍讀官)으로서 고전을 진강(進講)하였다. 1601년(선조 34)에는 임천군수(林川郡守)가 되었다.

1603년(선조 36)에는 다시 장령교리, 세자시강원보덕을 지냈으며, 이듬해 사인집의전적 등을 역임하고, 1606년(선조 39) 사인으로 춘추관지제교(春秋館知製敎)를 겸하여 실록의 중인(重印)에 참여하였다. 이어서 상의원정, 보덕필선(弼善)을 역임하고 1607년(선조 40) 선천군수(宣川郡守)로 외직에 나갔다.

1612년(광해군 4) 다시 사인으로 들어왔다가 1615년(광해군 7) 여주목사(驪州牧使)로 나갔다. 1624년(인조 2)에 장례원판결사가 되었는데 이때 아들 이진영(李晉英)공조정랑, 손자 이계(李烓)사정(司正)으로 재직하여, 3대가 관직에 종사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