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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黃沂)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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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청원(淸源)
생년1556(명종 11)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장수(長水)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황승석(黃承錫)
조부황순(黃純)
증조부황근창(黃謹昌)

[상세내용]

황기(黃沂)
1556년(명종 11)∼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청원(淸源). 황근창(黃謹昌)의 증손으로, 조부는 황순(黃純)이고, 부친은 선공감주부 황승석(黃承錫)이며, 상주목사 황락(黃洛)이 형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이어 1583년(선조 16)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영변판관(寧邊判官)으로 보임하다가 임란이 발생하자, 고을을 버리고 도망갔다가 다시 백의종군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예조정랑으로 복직되었고, 지평을 거쳐 공조정랑이 되어서는 에서 파견된 송경략(宋經略)문례관(門禮官)으로 의주에 다녀왔다. 다시 지평을 거쳐 1599년(선조 32) 서산군수로 재직하던 중, 사사로이 잡물(雜物)을 정원으로 직송하였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추고당하였다.

1601년(선조 34) 개성부경력서흥부사를 거쳐 담양부사가 되었으나, 부임한 지 5일 만에 행실이 비루하고 일처리에 물의가 있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그 뒤 성균관전적으로 복직되었고, 『선조실록』 작성시 사재감정으로서 편수관이 되었지만, 실록찬수관으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간원의 탄핵을 받아 빠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司馬榜目
大東野乘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