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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승(朴準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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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비암(沘菴)
생년1866(고종 3)
졸년1927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전라북도 임실
공훈건국훈장 대통령장

[상세내용]

박준승(朴準承)
1866년(고종 3)∼1927년.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호는 비암(沘菴). 전라북도 임실 출신.

1891년에 천도교에 입교하여 1897년에 접주(接主)가 되고, 1908년에 수접주(首接主), 1912년 전라남도 장성군 천도교대교구장 겸 전라도순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19년 2월경 손병희(孫秉熙)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수교도(首敎徒)인 유태홍(柳泰洪)박영창(朴永昌)김의규(金衣圭)에게 독립선언서 5,000매를 배부하여, 장성남원임실 등지에서 궐기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해 2월 25일부터 27일경까지 천도교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손병희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과 만나 독립운동에 관한 설명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승낙하였다.

2월 27일 최린(崔麟)오세창임예환(林禮煥)권병덕(權秉悳)나인협(羅仁協)홍기조(洪基兆)김완규(金完圭)나용환(羅龍煥)홍병기(洪秉箕)양한묵(梁漢黙) 등과 함께 김상규(金相奎)의 집에 모여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검토하고 민족대표로서 서명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민족대표 손병희 등과 함께 인사동의 태화관(泰和館)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일본경찰에 자진검거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三‧一運動秘史(李炳憲, 時事時報社, 1959)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집필자]

김진봉(金鎭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