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완규(金完圭)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C644ADDCB1876X0
호(號)송암(松巖)
생년1876(고종 13)
졸년1949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서울
공훈건국훈장대통령장

[상세내용]

김완규(金完圭)
1876년(고종 13)∼1949년.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호는 송암(松巖). 서울 출신.

1898년 여수통신주사(麗水通信主事)‧한성부주사(漢城府主事) 등을 지내고, 국권상실 이후에는 천도교에 입교하여 봉도(奉道)‧법암장(法庵長)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2월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하여 상경하여,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독립만세운동계획을 듣고 그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그달 27일 김상규(金相奎)의 집에서 최린(崔麟)오세창권병덕(權秉悳) 등과 서명, 날인하였다.

3월 1일 태화관(泰華館)의 독립선언식에 참여했다가 검거되어 1920년 경성 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천도교 도사(道師)로서 종교활동과 민족운동을 계속하였다.

광복 후에는 국민회 재정부장을 지냈고,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三‧一運動秘史(李炳憲, 時事時報社, 1959)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집필자]

김진봉(金鎭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