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신(李應辰)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751C2E0B1817X0 |
시호(諡號) | 문헌(文憲) |
생년 | 1817(순조 17)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화면(李華冕)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응신(李應辰)
1817년(순조 17)~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공오(拱五), 호는 소산(素山)이며, 본관 전주(全州)이다.
부친은 이화면(李華冕)이다.
1860년(철종 11) 유학으로서 증광문과 복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 관록(館錄)에 들었다.
1866년(고종 3) 사간으로서 연차에 참여하여 형률의 올바른 적용을 주장하였다.
1867년 우통례(右通禮)가 되었고, 1875년 부호군을 지냈다.
1880년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고, 예방승지를 역임하였다. 임오군란이 일어나던 1882년 홍문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행호군을 지냈다.
1883년 이조참판에 올랐고, 1886년 지춘추관사에 특탁되었으며,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87년 한성부판윤과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부친은 이화면(李華冕)이다.
1860년(철종 11) 유학으로서 증광문과 복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 관록(館錄)에 들었다.
1866년(고종 3) 사간으로서 연차에 참여하여 형률의 올바른 적용을 주장하였다.
1867년 우통례(右通禮)가 되었고, 1875년 부호군을 지냈다.
1880년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고, 예방승지를 역임하였다. 임오군란이 일어나던 1882년 홍문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행호군을 지냈다.
1883년 이조참판에 올랐고, 1886년 지춘추관사에 특탁되었으며,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87년 한성부판윤과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高宗時代史 1∼3(國史編纂委員會, 1967∼1969)
高宗時代史 1∼3(國史編纂委員會, 1967∼1969)
[집필자]
박민영(朴敏泳)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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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7-03 | 규장각 문집 해제의 소산문집초고를 참고하여 생년 1817, 자 공오(拱五), 호 소산(素山), 본관 전주(全州), 아버지 화면(華冕)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