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준(姜明俊)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15BA85C900B1849X0 |
생년 | 1849(헌종 15) |
졸년 | 1882(고종 19) |
시대 | 조선후기 |
활동분야 | 군인 > 군인 |
부 | 강홍복(姜弘卜) |
[상세내용]
강명준(姜明俊)
1849년(헌종 15)∼1882년(고종 19). 조선 말기의 하급군인. 임오군란 주동자 중의 한 사람. 강홍복(姜弘卜)의 아들이다. 서울 청파(靑坡)동에 살았다.
1882년 6월 5일 선혜청(宣惠廳) 도봉소(都捧所)에서 무위영(武衛營) 소속의 구 훈련도감 군병들에게 군료(軍料)를 지급할 때, 김춘영(金春永)‧유복만(柳卜萬) 등과 함께 선혜청고직(宣惠廳庫直)과 무위영영관(武衛營營官)을 구타하여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6월 9일 김장손(金長孫)‧유춘만(柳春萬)이 이끄는 군민들의 포도청 습격에 의하여 풀려나, 다음날 김장손‧유춘만 등과 함께 군민을 이끌고 창덕궁에 들어갈 때 입궐을 선창하였다 한다.
7월 16일 청나라군사의 이태원 습격 때 체포되어 혹독한 심문을 받고, 8월 24일 김장손 등 다른 군병 7인과 함께 군기시(軍器寺) 앞길에서 능지사(凌遲死)로 처형되었다.
1882년 6월 5일 선혜청(宣惠廳) 도봉소(都捧所)에서 무위영(武衛營) 소속의 구 훈련도감 군병들에게 군료(軍料)를 지급할 때, 김춘영(金春永)‧유복만(柳卜萬) 등과 함께 선혜청고직(宣惠廳庫直)과 무위영영관(武衛營營官)을 구타하여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6월 9일 김장손(金長孫)‧유춘만(柳春萬)이 이끄는 군민들의 포도청 습격에 의하여 풀려나, 다음날 김장손‧유춘만 등과 함께 군민을 이끌고 창덕궁에 들어갈 때 입궐을 선창하였다 한다.
7월 16일 청나라군사의 이태원 습격 때 체포되어 혹독한 심문을 받고, 8월 24일 김장손 등 다른 군병 7인과 함께 군기시(軍器寺) 앞길에서 능지사(凌遲死)로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日省錄
推案及鞠案
韓國最近政治史(李瑄根, 正音社, 1950)
壬午軍變(權錫奉,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近代日鮮關係の硏究(田保橋潔, 朝鮮總督府中樞院, 1940)
日省錄
推案及鞠案
韓國最近政治史(李瑄根, 正音社, 1950)
壬午軍變(權錫奉,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近代日鮮關係の硏究(田保橋潔, 朝鮮總督府中樞院, 1940)
[집필자]
박찬승(朴贊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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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