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준(趙秉駿)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BCD1C900B1814X0 |
자(字) | 경범(景範) |
시호(諡號) | 효정(孝貞) |
생년 | 1814(순조 14) |
졸년 | 1858(철종 9)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양(豊壤)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원영(趙原永) |

[관련정보]
[상세내용]
조병준(趙秉駿)
1814년(순조 14)∼1858년(철종 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범(景範). 조원영(趙原永)의 아들이며,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종질이다.
1841년(헌종 7)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8년 규장각직제학‧개성유수를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1850년(철종 1) 한성부판윤을 지내고, 다음해 수원부유수를 거쳐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수원부유수 재직 때 그곳 사당 영정(影幀)들이 오래되었음을 보고 강릉본(江陵本)의 공자상(孔子像)을 본떠 안치하도록 하였다.
1852년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854년 다시 한성부판윤이 되었고, 이듬해 공조판서‧대사헌‧행대호군‧우참찬 등을 지냈다.
1856년 세번째로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판의금부사‧상호군을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1841년(헌종 7)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8년 규장각직제학‧개성유수를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1850년(철종 1) 한성부판윤을 지내고, 다음해 수원부유수를 거쳐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수원부유수 재직 때 그곳 사당 영정(影幀)들이 오래되었음을 보고 강릉본(江陵本)의 공자상(孔子像)을 본떠 안치하도록 하였다.
1852년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854년 다시 한성부판윤이 되었고, 이듬해 공조판서‧대사헌‧행대호군‧우참찬 등을 지냈다.
1856년 세번째로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판의금부사‧상호군을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哲宗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哲宗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집필자]
김옥희(金玉姬)
대표명 | 조병준(趙秉駿) |
성명 | 조병준(趙秉駿) |
성명 : "조병준(趙秉駿)"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3-27 | 침계(梣溪) 윤정현(尹定鉉) 撰 行兵曹判書趙秉駿謚狀을 참고하여 졸년을 추가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