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명(李源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6D0BA85B1807X0 |
이명(異名) | 이원경(李源庚) |
자(字) | 치명(穉明) |
호(號) | 종산(鍾山) |
시호(諡號) | 문정(文靖) |
생년 | 1807(순조 7) |
졸년 | 1887(고종 24)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용인(龍仁)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규현(李奎鉉) |
모 | 반남박씨(潘南朴氏) |
조부 | 이재학(李在學) |
저서 | 『동야휘집(東野彙輯)』 |
[상세내용]
이원명(李源命)
1807년(순조 7)∼1887년(고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초명은 원경(源庚), 자는 치명(穉明), 호는 종산(鍾山).
예조판서를 지낸 이재학(李在學)의 손자로, 형조판서 이규현(李奎鉉)의 둘째아들이며, 모친은 반남박씨(潘南朴氏)이다.
1829년(순조 29) 정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성균관대사성에 오른 뒤, 1855년 경기도관찰사, 1860년 이조참판‧도총관, 1861년 형조판서를 지내다가 같은해 11월에 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62년 대호군‧사헌부대사헌, 1863년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를 거쳐 이조판서로 치사(致仕)하였다.
저서로는 1869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설화집 『동야휘집(東野彙輯)』 8권 8책이 있는데, 『동야휘집』을 편찬하면서 역대의 야담집을 참고하여 형식을 가다듬는 데 치중하여 야담의 규범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나, 설화로서의 생기와 개방성을 희생시켰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예조판서를 지낸 이재학(李在學)의 손자로, 형조판서 이규현(李奎鉉)의 둘째아들이며, 모친은 반남박씨(潘南朴氏)이다.
1829년(순조 29) 정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성균관대사성에 오른 뒤, 1855년 경기도관찰사, 1860년 이조참판‧도총관, 1861년 형조판서를 지내다가 같은해 11월에 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62년 대호군‧사헌부대사헌, 1863년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를 거쳐 이조판서로 치사(致仕)하였다.
저서로는 1869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설화집 『동야휘집(東野彙輯)』 8권 8책이 있는데, 『동야휘집』을 편찬하면서 역대의 야담집을 참고하여 형식을 가다듬는 데 치중하여 야담의 규범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나, 설화로서의 생기와 개방성을 희생시켰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朝鮮後期文獻說話의 硏究(曺喜雄, 螢雪出版社, 1980)
東野彙輯所載野談의 類型的 硏究(權泰乙, 嶺南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79)
東野彙輯所載野談의 類型的 硏究(權泰乙, 嶺南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79)
[집필자]
조희웅(曺喜雄)
대표명 | 이원명(李源命) |
성명 | 이원명(李源命) |
성명 : "이원명(李源命)"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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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