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택(沈敬澤)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CACBDD0DDB1809X0 |
자(字) | 자여(子輿) |
시호(諡號) | 효정(孝靖) |
생년 | 1809(순조 9) |
졸년 | 1869(고종 6)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청송(靑松)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심의복(沈宜復) |
출신지 | 서울 |
저서 | 『건연장(巾衍藏)』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심경택(沈敬澤)
1809년(순조 9)∼1869년(고종 6)(주1)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여(子輿). 서울 출신.
부친은 심의복(沈宜復)이며, 1838년(헌종 4)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53년(철종 4) 대사성을 지낸 뒤 이듬해 예방승지를 거쳐 1855년에는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857년 독직사건으로 인하여 중화부에 유배되었다가 안변부에 찬배(竄配)되었다.
1859년 다시 복직되어 이조참판‧행도승지‧한성부판윤‧공조판서 등을 거쳐, 1860년에는 형조판서를 역임한 뒤, 이듬해에 대사헌이 되었다.
1862년 다시 한성부판윤을 거쳐, 1865년(고종 2) 대사헌‧한성부판윤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그뒤에도 대사헌으로 오랫동안 활약하였다.
저서로는 『건연장(巾衍藏)』이 있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생졸년 |
靑松沈氏族譜를 참고하여 생년을 1805년에서 1809년으로 수정하고, 졸년을 추가함. |
부친은 심의복(沈宜復)이며, 1838년(헌종 4)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53년(철종 4) 대사성을 지낸 뒤 이듬해 예방승지를 거쳐 1855년에는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857년 독직사건으로 인하여 중화부에 유배되었다가 안변부에 찬배(竄配)되었다.
1859년 다시 복직되어 이조참판‧행도승지‧한성부판윤‧공조판서 등을 거쳐, 1860년에는 형조판서를 역임한 뒤, 이듬해에 대사헌이 되었다.
1862년 다시 한성부판윤을 거쳐, 1865년(고종 2) 대사헌‧한성부판윤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그뒤에도 대사헌으로 오랫동안 활약하였다.
저서로는 『건연장(巾衍藏)』이 있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哲宗實錄
國朝榜目
巾衍藏
哲宗實錄
國朝榜目
巾衍藏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대표명 | 심경택(沈敬澤) |
성명 | 심경택(沈敬澤) |
성명 : "심경택(沈敬澤)"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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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