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묵(成遂黙)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31C218BB35B1792X0 |
자(字) | 성집(聖執) |
시호(諡號) | 효헌(孝憲) |
생년 | 1792(정조 16) |
졸년 | 1850(철종 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창녕(昌寧)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성긍주(成肯柱) |
출신지 | 서울 |
[관련정보]
[상세내용]
성수묵(成遂黙)
1792년(정조 16)∼1850년(철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성집(聖執). 서울 출신. 부사 성긍주(成肯柱)의 아들이다.
1825년(순조 25) 진사로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29년까지는 한림원직각 등 순탄하게 승진하였다. 같은해 전라우도암행어사로 그 지역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한 바 있고, 1832년 무안현감을 거쳐 183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7년(헌종 3) 동래부사가 되어 이듬해에 대마도의 도주를 상대로 외교문서를 취급한 바 있다.
1839년 대사성, 1840년 이조참의, 1841년 도방대거승지, 1843년 함경도관찰사, 1846년 이조참판‧대사헌을 거쳐 1847년 형조판서로 있을 때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48년 좌참찬, 1849년(철종 즉위) 판윤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이듬해 3월에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의 정사(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 경력이 다양하고 승진이 순탄하였으며, 외교활동이 많았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1825년(순조 25) 진사로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29년까지는 한림원직각 등 순탄하게 승진하였다. 같은해 전라우도암행어사로 그 지역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한 바 있고, 1832년 무안현감을 거쳐 183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7년(헌종 3) 동래부사가 되어 이듬해에 대마도의 도주를 상대로 외교문서를 취급한 바 있다.
1839년 대사성, 1840년 이조참의, 1841년 도방대거승지, 1843년 함경도관찰사, 1846년 이조참판‧대사헌을 거쳐 1847년 형조판서로 있을 때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48년 좌참찬, 1849년(철종 즉위) 판윤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이듬해 3월에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의 정사(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 경력이 다양하고 승진이 순탄하였으며, 외교활동이 많았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國朝榜目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자 : "성집(聖執)"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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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4-19 | 禮曹判書成公諡狀을 참고하여 졸년 1850(철종 1 경술)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