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수(林永洙)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84C601C218B1790X0 |
자(字) | 영지(永之) |
시호(諡號) | 효정(孝貞) |
생년 | 1790(정조 14) |
졸년 | 1879(고종 16)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나주(羅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임유진(林有鎭) |
증조부 | 임양호(林養浩) |
[관련정보]
[상세내용]
임영수(林永洙)
1790년(정조 14)∼1879년(고종 1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영지(永之).
임양호(林養浩)의 증손으로, 임유진(林有鎭)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씨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홍문관 등의 언관직을 거쳐서 정3품으로 승진하여 장악원정으로 근무하던 중 1836년(헌종 2)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당상관이 되었다.
1841년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되었으며, 두 차례 대사간을 더 지낸 뒤 승지로 임명되어 1850년(철종 1) 헌종의 산릉역 및 제례에서의 노고로 종2품으로 승진하였다. 사헌부대사헌에 제수된 뒤 1859년 부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이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그뒤 10여차례에 걸쳐 대사헌을 지내는 등 법사(法司)의 장관으로서 관직생활을 하였다.
1866년 한성부판윤을 거쳐서 공조판서에 제수되었고, 1869년 예조판서를 지냈다.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그 대부분의 기간을 주로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보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임양호(林養浩)의 증손으로, 임유진(林有鎭)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씨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홍문관 등의 언관직을 거쳐서 정3품으로 승진하여 장악원정으로 근무하던 중 1836년(헌종 2)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당상관이 되었다.
1841년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되었으며, 두 차례 대사간을 더 지낸 뒤 승지로 임명되어 1850년(철종 1) 헌종의 산릉역 및 제례에서의 노고로 종2품으로 승진하였다. 사헌부대사헌에 제수된 뒤 1859년 부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이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그뒤 10여차례에 걸쳐 대사헌을 지내는 등 법사(法司)의 장관으로서 관직생활을 하였다.
1866년 한성부판윤을 거쳐서 공조판서에 제수되었고, 1869년 예조판서를 지냈다.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그 대부분의 기간을 주로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보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國朝榜目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오종록(吳宗祿)
대표명 | 임영수(林永洙) |
성명 | 임영수(林永洙) |
성명 : "임영수(林永洙)"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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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