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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교(南尙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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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우촌(雨村)
생년1784(정조 8)
졸년1866(고종 3)
시대조선후기
본관의령(宜寧)
활동분야종교 > 천주교인
남이우(南履佑)

[상세내용]

남상교(南尙敎)
1784년(정조 8)∼1866년(고종 3). 본관은 의령(宜寧), 호는 우촌(雨村).

부친은 남이우(南履佑)이다. 일찍이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수령과 충주목사(忠州牧使)를 거쳐 1865년(고종 2)에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제수받았다. 품계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이다. 1827년(순조 27)에 북경에서 영세, 입교하였고,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이다. 동생 탄교(坦敎)의 아들 남종삼(南鍾三)을 입양하여 입교시키고, 다른 천주교 교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남상교는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여러 가지 중직(重職)을 거절하며 살았던 반면, 남종삼은 문과에 합격하여 홍문관교리를 지내고 승지가 되어 흥선대원군과 가까이 지냈다. 1866년(고종 3) 당시 러시아가 국경을 넘어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었는데, 남종삼은 천주교 탄압을 면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천주교 교인 홍봉주(洪鳳周), 김면호(金勉浩) 등과 함께 러시아 세력을 막아낼 수 있는 한‧영‧불 삼국동맹을 제안하여 흥선대원군과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프랑스 신부들의 만남을 주선하였으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 천주교에 우호적이었던 흥선대원군이 오히려 국내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천주교를 강하게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6년간 지속된 병인박해로 인하여 그 해 3월에 남종삼은 서대문 밖에서 처형 되고, 남상교는 나이가 80이 넘었기 때문에 처형을 면하고 공주 진영(公州鎭營)으로 압송되었다가 그 해 순교하였다. 장손 남규희, 며느리 이씨가 순교하고, 둘째 손자 남명희와 손녀 둘은 경상도 창녕현으로 유배되어 노비가 되었다. 3대에 걸쳐 4명이 순교한 것이다. 아들 남종삼은 1984년 시성되었는데 103위 한국 성인 중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 충북 제천시 봉양면 학산리(묘재)에 집터가 있다.

『우촌시고(雨村詩藁)』가 있다고 전해진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朝鮮人名辭書
하늘에서 땅 끝까지-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주평국 저, 가톨릭출판사, 1996)

[집필자]

고윤희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