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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면호(金勉浩)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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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김토마스(金Thomas)
이명(異名)김면호(金冕浩)
생년1820(순조 20)
졸년1866(고종 3)
시대조선후기
본관안동(安東[舊])
활동분야종교 > 천주교인
출신지안동

[상세내용]

김면호(金勉浩)
1820년(순조 20)∼1866년(고종 3). 조선 후기의 천주교 순교자. 본관은 안동(安東[舊]). 세례명 토마스. 일명 김면호(金冕浩) 또는 김계호. 안동 출신.

어려서 서울 주동(鑄洞)에 이사해 살았다. 그의 어머니와 형 김익례(金翼禮)김응례(金應禮)가 먼저 입교하였고, 그는 형들로부터 교리를 배워 19세 때 입교하였다.

그러나 성격이 호방하여 놀기를 좋아했으므로 18년 동안이나 교회에 대해 냉담했는데, 1866년초에 비로소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열심히 신앙을 지켜나갔다.

그는 다른 신자들 앞에서 지난날의 잘못을 씻는 길은 오직 순교로 구원을 받는 길밖에 없다고 공언하고 다닐 만큼 열성적으로 전교에 힘썼다.

1866년 병인박해의 기미가 보이자 이를 막고자 고심하던 중, 때마침 러시아가 남진야욕을 드러내어 우리나라 북부국경을 자주 침범하는 일이 일어났으므로, 나라를 구하고 교회를 박해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목적으로, 남종삼(南鍾三)홍봉주(洪鳳周) 등과 상의하여 주교 베르뇌(Berneux) 등을 통해 프랑스의 세력을 이용하여 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하려는 이른바 방아책(防俄策)을 흥선대원군에게 건의하는 편지를 올렸다.

그러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해 7월 18일 붙잡혀 9월 10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긔일기
丙寅迫害資料硏究(崔奭祐, 한국교회사연구소, 1968)

[집필자]

최석우(崔奭祐)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