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鄭漪)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15C758FFFFB1781X0 |
이명(異名) | 정진명(鄭鎭命) |
자(字) | 청보(淸夫) |
자(字) | 성여(性汝) |
생년 | 1781(정조 5) |
졸년 | 1832(순조 3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영일(迎日)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재화(鄭在和) |
모 | 청선군주(淸璿郡主) |
외조부 | 장헌세자(莊獻世子)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의(鄭漪)
1781년(정조 5)∼1832년(순조 3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정진명(鄭鎭命). 자는 청보(淸夫) 또는 성여(性汝).
정철(鄭澈)의 9세손으로, 흥은위(興恩尉) 정재화(鄭在和)의 아들이며, 모친은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딸 청선군주(淸璿郡主)이다.
음보(蔭補)로 정조말 직장에 출사(出仕), 순조초에 감찰을 거쳐 1815년(순조 15) 수원판관, 1822년 동부승지, 그뒤 여주목사를 지냈으며, 형조참판으로 치사(致仕)하였다.
과욕(寡慾)하여 마음이 즐겁고 편안하여 항상 밝았을 뿐만 아니라, 신총(神聰)이 있어 널리 경사(經史)를 섭렵하였고, 시문‧서화에도 뛰어났으며 국조전고(國朝典故)에 달통하여 공가(公家)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세히 변유(辨諭)하여 뭇 관료가 그의 말을 들었다.
만년에 낙봉(駱峰)의 기슭에 나가 띳집에서 은약(隱約)하게 살면서 야노(野老)들과 어울려 지냈으므로 그가 옛날 높은 시랑(侍郞)이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정철(鄭澈)의 9세손으로, 흥은위(興恩尉) 정재화(鄭在和)의 아들이며, 모친은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딸 청선군주(淸璿郡主)이다.
음보(蔭補)로 정조말 직장에 출사(出仕), 순조초에 감찰을 거쳐 1815년(순조 15) 수원판관, 1822년 동부승지, 그뒤 여주목사를 지냈으며, 형조참판으로 치사(致仕)하였다.
과욕(寡慾)하여 마음이 즐겁고 편안하여 항상 밝았을 뿐만 아니라, 신총(神聰)이 있어 널리 경사(經史)를 섭렵하였고, 시문‧서화에도 뛰어났으며 국조전고(國朝典故)에 달통하여 공가(公家)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세히 변유(辨諭)하여 뭇 관료가 그의 말을 들었다.
만년에 낙봉(駱峰)의 기슭에 나가 띳집에서 은약(隱約)하게 살면서 야노(野老)들과 어울려 지냈으므로 그가 옛날 높은 시랑(侍郞)이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梅山集
國朝人物志
純祖實錄
梅山集
國朝人物志
[집필자]
반윤홍(潘允洪)
성명 : "정의(鄭漪)"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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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