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순(金邁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900C21CB1776X0 |
자(字) | 덕수(德叟) |
호(號) | 대산(臺山) |
시호(諡號) | 문청(文淸) |
생년 | 1776(영조 52) |
졸년 | 1840(헌종 6)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안동(安東[新])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이수(金履鏽) |
모 | 죽산안씨(竹山安氏) |
외조부 | 안종주(安宗周) |
저서 | 『대산집』 |
저서 | 『대산공이점록(臺山公移占錄)』 |
저서 | 『주자대전차문표보(朱子大全箚問標補)』 |
저서 | 『전여일록(篆餘日錄)』 |
저서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상세내용]
김매순(金邁淳)
1776년(영조 52)∼1840년(헌종 6).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덕수(德叟), 호는 대산(臺山).
부친은 참봉 김이수(金履鏽), 모친은 죽산안씨(竹山安氏[舊]) 안종주(安宗周)의 딸이다.
1795년(정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사인을 거쳐 초계문신(抄啓文臣)이 되었고, 그뒤 예조참판을 거쳐 1821년(순조 21) 강화부유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당대의 문장가로 홍석주(洪奭周) 등과 함께 명성이 높았으며, 여한십대가(麗韓十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또한, 성리설에 관하여 일가견을 가지고 있어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을 둘러싼 호락논쟁(湖洛論爭)에 한원진(韓元震)의 호론(湖論)을 지지하였다. 고종 때 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저서로는 『대산집』‧『대산공이점록(臺山公移占錄)』‧『주자대전차문표보(朱子大全箚問標補)』‧『전여일록(篆餘日錄)』‧『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등이 있다.
부친은 참봉 김이수(金履鏽), 모친은 죽산안씨(竹山安氏[舊]) 안종주(安宗周)의 딸이다.
1795년(정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사인을 거쳐 초계문신(抄啓文臣)이 되었고, 그뒤 예조참판을 거쳐 1821년(순조 21) 강화부유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당대의 문장가로 홍석주(洪奭周) 등과 함께 명성이 높았으며, 여한십대가(麗韓十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또한, 성리설에 관하여 일가견을 가지고 있어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을 둘러싼 호락논쟁(湖洛論爭)에 한원진(韓元震)의 호론(湖論)을 지지하였다. 고종 때 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저서로는 『대산집』‧『대산공이점록(臺山公移占錄)』‧『주자대전차문표보(朱子大全箚問標補)』‧『전여일록(篆餘日錄)』‧『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등이 있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臺山集
臺山集
[집필자]
이민식(李民植)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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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