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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평(李羲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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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준여(準汝)
호(號)계서(溪西)
생년1772(영조 48)
졸년1839(헌종 5)
시대조선후기
본관한산(韓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도영(李道永)
생부이태영(李泰永)
조부이산중(李山重)

[상세내용]

이희평(李羲平)
1772년(영조 48)∼1839년(헌종 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준여(準汝), 호는 계서(溪西).

군자감정 이산중(李山重)의 손자로, 예조참판 이태영(李泰永)의 아들이며, 이도영(李道永)에게 입양되었다.

그의 집안은 노론 벌열층으로서 혜경궁홍씨의 외척이기도 하다. 부인 풍산홍씨는 효행으로 이름이 높아 정려된 바 있다. 태인현감을 지낸 심능숙(沈能淑)과 교우관계를 맺었다.

1810년 사마시에 급제하였고, 전주판관황주목사를 지냈다.

24세에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수원으로 가서 혜경궁홍씨의 회갑잔치를 하였다는 내용의 국문체 기행문인 「화성일기(華城日記)」를 지었다.

또한, 생부 이태영의 행적을 주요내용으로 삼아 104편의 설화를 모은 『과정록(過庭錄)』을 남겼다.

보통, 동생인 이희준(李羲準)의 편저로 알려져왔던 『계서잡록』『계서야담』은 두 사람의 호가 바뀌어 잘못 전하여졌을 가능성이 높아서 이희평의 작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韓山李氏族譜
韓山文獻叢書(韓山文獻叢書編纂委員會, 大田 農經出版社, 1981)
朝鮮後期文獻說話의 硏究(曺喜雄, 螢雪出版社, 1980)
溪西李羲平文學硏究(李賢澤, 國民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83)

[집필자]

조희웅(曺喜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